강만조
康萬祚1893. 1. 12 ~ 1952. 3. 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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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18) 1893년 1월 12일 경상북도 경산군(慶山郡) 진량면(珍良面) 봉회동(鳳會洞, 현 경산시 진량읍 봉회리)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는 강전조(康田祚)가 있다. 유년기와 청년기의 행적에 관해서는 알려져 있는 바가 거의 없지만, 1920년대 후반기부터 기독교 장로회에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1927년 8월 당시 경북노회 산하 경북 주일학교협의회(主日學校協議會)는 그해 8월 18일부터 25일까지 ‘제1회 경북주일교대회(慶北主日校大會)’를 개최하여 전시회·음악회·학생대회 등을 열었다. 이 대회의 전람부(展覽部)에서 주일 및 주간학교의 서류, 각종 주일학교 관련 사진을 전시하고 안내하면서 부원으로 활발히 활동하였다. 또한, 경북 청도에 있는 중앙교회에서 1933년 11월 20일부터 27일까지 ‘부흥사경회(復興査經會)’를 열 당시 초청되어 전도사로서 주도하였으며, 교인과 유지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한편, 1934년 5월 19일에는 경북 경산군 진량면 상림동(上林洞)에 주소를 두고 조선기독교장로회 소속으로서 포교계(布敎屆)를 제출하여 승인받았다. 1931년에는 봉회교회(현 진량제일교회) 전도사로 부임하였는데, 이에 대해서는 1927년부터라는 설도 있다. 전도사로 부임하면서 예배당을 신축 및 증축하여 150명 가량의 교인이 출석하는 조직 교회로 성장시켰다. 일제 종교계에 신사참배와 각종 신도의식을 가혹하게 요구하던 때에도 봉회교회를 비롯해 근처의 상림, 평사교회에서 시무하였다. 1943년 6월 18일 출애굽기 20장을 인용하여 ‘민족주의자 모세를 본받자’라는 제목으로 쓴 메모에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이 승리할 것이며 머지않아 한국이 독립할 것’이라고 적은 내용이 일제 경찰에 발견되면서 체포되었다. 봉회교회 장로 김종철(金鍾徹)을 비롯해 안치준(安致準)·안치대(安致大)·손우헌 등도 이 사건으로 함께 검거되었다. 이후 경산경찰서 유치장에서 1년여를 보내고 대구형무소에서 5개월 가량 수감되었다. 1944년 11월 11일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가 무혐의 처리되면서 1년 5개월여 만에 석방되었다. 광복 후에도 종교계에 몸담고 있다가 6·25전쟁이 발발하자 충북 청주로 피난하였다. 1951년 3월 18일 청주 탑동에 있는 청주고등성경학교 강당에서 피난민들을 모아 예배한 것을 시작으로 시온교회(현 청주동산교회)를 설립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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