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鳳煥
車鳳煥1900. 6. 29 ~ 1950. 7. 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7)
관련 사건
- · 1919년 홍천군 홍천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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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07) 1900년 6월 29일 한성부(漢城府) 종로 4정목(鍾路 四丁目, 현 서울시 종로 4가)에서 태어났다. 이후 본적지인 강원도 홍천군(洪川郡) 홍천면(洪川面) 신장대리(新場垈里)로 이주하였다. 이명은 차봉안(車鳳顔)·차홍광(車弘光)이다. 기독교인이며, 고물상(古物商)을 하였다. 1919년 4월 1일 차봉철(車奉哲)·서상우(徐相祐)·오창섭(吳昌燮) 등과 함께 홍천면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홍천면 신장대리 장터에서 거행된 만세시위는 서울에서 만세운동을 직접 목격하고 돌아온 차봉철로부터 시작되었다. 차봉철은 기독교인 서상우·천도교인 오창섭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펼치기로 계획하고 4월 1일 홍천 장날을 거사일로 결정하였으며, 각자 사람들을 규합하기로 결의하였다. 홍천의 만세시위가 감리교계와 천도교계 인사들의 긴밀한 협조 속에 추진되는 과정에서 홍천감리교회를 함께 다니던 차봉철의 권유를 받고 거사 준비에 동참하게 되었다. 이때 감리교 측에서는 홍천면, 천도교 측에서는 북방면(北方面) 주민들의 참여를 독려하기로 하였다. 또한 만세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소형 태극기는 감리교, 대형 태극기는 천도교에서 제작하였다. 차봉철·오창섭 등 주도자들과 함께 3월 31일 고익진(高翼振)의 집 앞 도로에서 모여 만세시위의 결의를 새롭게 다지면서, 다음날 홍천·인제 간 도로공사 부역에 동원된 인부들이 많이 모일 것을 예상하고 이를 이용하기로 하였다. 4월 1일 아침 일찍 신장대리 장터에 도착하여 감리교 주도자들과 함께 준비해 온 태극기를 장꾼과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며 만세시위 참여를 독려하였고, 북방면 주민들은 도로공사 인부로 가장하고 장터로 모여 들었다. 오후 1시경 오창섭·김영옥(金永玉) 등이 큰 태극기를 흔들면서 장터로 들어서자, 감리교측 주도자들과 함께 시위대를 이끌고 합류하여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다른 주도자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선창하자, 만세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이 일제히 독립만세를 외치며 호응하였다. 이어서 200여 명의 시위대를 이끌고 장터 곳곳을 행진하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많은 주민들이 참여하면서 시위대의 규모는 500여 명으로 증가하였고, 만세시위의 열기는 점점 더 고조되었다. 시위대와 함께 군청과 면사무소 앞으로 다시 행진하며 만세시위를 지속하였다. 이어서 다른 주도자들과 함께 시위대를 지휘하여 홍천헌병분견소를 향해 행진하였다. 하지만 춘천(春川)에서 동원된 일본군 수비대와 일제 헌병들에게 시위대가 진압당하는 과정에서 다른 주도자들과 함께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6월 1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7월 2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그해 10월 2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었다.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다가 1920년 4월 2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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