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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基福

崔基福

1901. 12. 28 ~ 1991.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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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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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동래(東萊)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동래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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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1년 12월 28일 경상남도 동래군(東萊郡, 현 부산시) 기장면(機張面) 대라리(大羅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5일 동래군 기장면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1919년 3월 1일에 일어난 만세운동은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이에 호응하기 위하여 경남 지역에도 3월 3일에 부산과 마산을 중심으로 독립선언서가 배부되었고, 각지에서 만세시위가 벌어졌다. 1919년 3월 13일 김수문(金守文)이 독립선언서를 가져와 서재선(徐再先)에게 전하면서 기장면에도 만세시위에 대한 소식이 전달되었다. 이후 김도엽(金度燁)·권철암(權鐵巖)·구수암(具壽巖)·김수룡(金壽龍)·이택규(李澤奎)·박공표(朴孔杓) 등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보고 일제에 대한 분노를 억누르기 힘들었다. 곧바로 이들과 함께 거사를 모의하였다. 거사일은 4월 5일 장날로 정하였다. 일단 독립선언서를 4백여 장을 복사하고 김도엽이 ‘양심발원인도적 자유민족(良心發原人道的自由民族)’라고 피로 쓴 큰 깃발과 ‘조선독립만세’, ‘조선독립단’이라고 쓴 큰 기를 만들었다. 4월 5일 오전 11시 거사 당일 기장면 시장에서 동지들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군중에게 나누어 주고 약속된 시간에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미리 작성해둔 혈서와 김도엽의 깃발 및 독립기를 장터 한가운데 꽂아두고 100여 명의 시위 군중에게 독립선언서를 나눠 주며 만세시위를 주동하자 장터는 군중으로 가득 차고 큰 시위의 물결이 일었다. 일제 경찰은 총을 쏘며 위협하였지만 시위는 오후 5시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일제 군대까지 달려와 시위대를 포위하자 군중은 해산할 수밖에 없었다. 이날의 시위 이후 일제 경찰의 탄압과 검거가 계속되어 결국 붙잡혔다. 이후 1919년 6월 1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출판법과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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