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룡
姜千龍1904. 7. 28 ~ 1964. 1. 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7)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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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17) 1904년 7월 28일 서울 냉동(冷洞, 현 서대문구 냉천동)에서 출생하였다. 이명으로는 강도웅(姜道雄)이 있으며 창씨개명 이후의 이름은 강산도웅(岡山道雄)이다. 유년기에 관한 기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개성(開城)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지만, 학비 문제로 곤란을 겪어 중도에 학업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도쿄(東京)의 쓰키시마(月島) 경찰서에 하룻밤 검속된 전력이 있다. 이후에는 서울에 있는 출생지로 돌아가서 회사에 다닌 것으로 보인다. 1944년 당시 서울 동대문구의 돈암정(敦岩町, 현 성북구 돈암동 일대)에 거주하면서 콩나물 생산에 종사하였다. 그러던 중 1944년 7월 하순에 서울 종로구 명륜정(明倫町) 4정목(4丁目, 현 종로구 명륜동)의 식료품 공장장이던 우츠노미야(宇之宮肇慶)의 집을 방문하여 그곳에 있던 의형제 격인 후쿠이(福井旭)와 담소를 나누었다. 이때 이야기한 내용에 대해 우츠노미야가 헌병대에 투서를 보내 밀고함으로써 문제가 되어 체포되었다. 사이판섬이 함락되고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내각이 총사직하는 등 점차 일본의 패망 시기가 오는 것 같다고 발언하는 한편, 미국에서 서재필 등 많은 사람이 한국 독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하거나, 머지않아 미국 군대가 상륙할 것이므로 우리는 죽창을 만들어 두었다가 미군과 함께 일본인을 한 사람이라도 더 죽여야 한다고 하면서 영어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발언에 조언비어(造言飛語)라는 혐의가 씌워졌다. 이 사건으로 1944년 11월 1일 경성지방법원으로부터 이른바 육군형법, 해군형법, 조선임시보안령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 형에 처해졌다. 이후 형에 불복하여 경성복심법원에 상고를 신청하였다. 상고심에서 변호사를 통해 다음의 이유를 들며 원심이 부당함을 피력하였다. 첫째, 평소 자신에게 빚 청산, 조합의 간부 선출 관련 등의 문제로 불만을 가지고 있던 우츠노미야의 투서 및 증언을 전적으로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원심은 부당하다. 둘째, 해당 발언 자체는 육군 및 해군 형법 등에 저촉되지 않으며 황군(皇軍)의 사기를 저해하지 않는 더 넓은 범위의 시국에 대한 이야기였다. 셋째, 본인의 사상 자체는 반전(反戰)이나 패전(敗戰)등을 논할 만큼 불순하지 않으며, 두세 사람이 나눈 개인적인 이야기는 다수에게 전파되지 않는다는 점 등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경성복심법원 재판부는 이러한 상고 사유를 받아들이지 않아 1945년 2월 8일 징역 1년 6개월의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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