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秉一
崔秉一1870 ~ 1941. 12. 2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2)
관련 사건
- · 1919년 명천군 상고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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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2) 함경북도 명천군(明川郡) 상고면(上古面) 목진동(木津洞)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9년 당시 50세이므로 1870년생으로 추정된다. 고향에서 어업과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22일 상고면 목진동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함경북도에서는 천도교와 기독교를 중심으로 만세시위 소식과 독립선언서가 전달되었다. 명천군에서는 3월 15일 명천군 하가면(下加面)과 상가면(下加面)에서 먼저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만세시위 전날인 3월 21일 최주영(崔周永)을 비롯한 마을 주민들을 만나서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였다. 그리고 거사 당일인 3월 22일 마을 주민 40여 명을 이끌고 목진동에 위치한 운만대(雲滿臺)의 선지곡(仙芝谷)으로 가서 태극기를 흔들면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5월 28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7월 2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이에 “조선민족으로서 정의 인도에 의해서 행동한 것은 범죄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상고하였지만, 그해 10월 2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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