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炳瀚
崔炳瀚1900. 6. 29 ~ 1969. 12. 2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1)
관련 사건
- · 1919년 공주군 정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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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1) 1900년 6월 29일 충청남도 공주군(公州郡) 정안면(正安面) 운궁리(雲弓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한자를 달리한 최병한(崔炳瀚)을 썼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4월 1일 공주군 정안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정안면의 만세시위는 석송리(石松里)의 유림 이기한(李綺漢)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음을 파악한 이기한은 이병억(李秉億) 등과 논의하고 정안면의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4월 1일 이기한 등은 석송리의 주민들에게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호소하면서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그러자 수십 명의 마을 주민들이 이에 공감하여 만세시위에 참여하였고, 이기한·이병억이 선두에 태극기를 앞세운 시위대를 이끌고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면사무소 소재지인 광정리(廣亭里)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모범림의 묘목 식수 작업에 동원되어 일하는 도중에, 이기한과 이병억의 지휘에 따라 이동하는 시위대를 마주쳤다. 시위대로부터 면사무소 앞에서 함께 만세시위를 전개하자는 권유를 받고, 이에 공감하면서 곧바로 함께 작업하던 사람들과 함께 동참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최범성(崔範聲)·윤원식(尹元植)·이월성(李月星)·황타관(黃他官) 등과 함께 식수 작업을 위한 연장을 그대로 가지고 시위대에 합류한 후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크게 외치면서 광정리로 행진하였다. 800여 명까지 불어난 시위대와 함께 광정리의 일본인 거주지와 정미소 앞 등 곳곳을 행진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리고 이기한의 지휘에 따라서 가지고 있던 연장을 이용하여 광정경찰관주재소를 습격하여 파괴하였다. 이후 시위대와 함께 해산하였다. 이후 참여자 색출을 위해 정안면으로 출동한 일제 경찰에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9월 2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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