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鳳俊
崔鳳俊1870. 2. 13 ~ 1935. 12. 2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1919년 서산군 대호지면
- · 정미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870년 2월 13일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현 당진시 대호지면) 적서리(赤䑕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4월 4일 서산군 대호지면과 정미면(貞美面)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대호지면 도호의숙(桃湖義塾) 출신의 남주원(南柱元)·이두하(李斗夏)·남계창(南啓昌)·남상직(南相直)·남상락(南相洛) 등 유생들은 1919년 3월 서울에서 열리는 고종 장례식에 참여하였는데, 여기서 만세운동을 접할 수 있었다. 이후 서산 지역에도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이 전해지면서 만세시위 열기가 고조되었다. 서산군 대호지면에서는 면장 이인정(李寅正)을 비롯하여 면서기 김동운(金東云)·강태완(姜太玩)·민재봉(閔載鳳)과 면사무소 직원 송재만(宋在萬) 등이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이인정 등은 인근 지역에서 벌어진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뒤 대호지면에서도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거사일은 천의장터의 장날인 4월 4일로 결정하고, 사전에 면내의 각 마을별로 연락망을 만들었다. 그리고 다수의 주민들을 만세시위에 참여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도로수선병목정리(道路修繕並木整理)의 건」이라는 공문을 각 마을로 보내면서, 도로 보수를 위해 한집에 한 명씩 4월 4일 면사무소로 모이라는 내용을 전달하였다. 4월 4일 아침 마을 구장의 통보를 받고 도로 보수공사에 사용할 연장을 챙겨서 대호지면사무소로 갔다. 약 600명의 주민들이 면사무소 앞에 모이자, 면장 이인정은 갑자기 ‘한국이 독립되었으니,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라’는 내용으로 연설하였다. 이를 듣고 독립이라는 취지에 공감하여 곧바로 다른 주민들과 함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송재만 등의 지휘에 따라 선두에 대형 태극기를 앞세운 시위대와 함께 독립만세를 연창하며 정미면 천의리에 위치한 천의장터로 향하였다. 이 과정에서 많은 주민들이 만세시위를 목격하고 계속 동참하였고, 시위대의 규모는 1,000여 명으로 증가하였다. 천의장터에 도착한 시위대와 함께 장터의 한복판에 대형 태극기를 세우고 독립에 대한 연설회를 개최한 뒤,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곳곳을 행진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만세시위가 끝나갈 무렵 당진경찰서에서 급파된 일제 경찰들이 시위대를 향해 총격을 가해 4명이 부상 당하였다. 이에 분노한 시위대와 함께 항의하기 위해 천의경찰관주재소로 향했는데, 이미 일제 경찰의 발포에 격분한 많은 사람들이 주재소를 공격하고 있었다. 송재만 등의 지휘에 따라 이춘응·김길성(金吉成)·김부복(金夫卜)·송봉운(宋逢云) 등과 함께 시위대의 선두에서 주재소를 향해 수십 차례 돌을 던져, 건물과 집기를 부수는 등 주재소를 완전히 파괴하였다. 이후 대호지면으로 출동한 홍성헌병수비대에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10월 2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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