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成玉
崔成玉1872. 1. 1 ~ 1929. 8. 3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5)
관련 사건
- · 1919년 부천군 계양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5) 1872년 1월 1일 경기도 부천군(富川郡) 계양면(桂陽面) 이화리(梨花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24일 계양면 장기리(場基里)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24일 오후 2시경 장날을 맞이하여 심혁성(沈爀誠)은 30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계양면 장기리 시장에서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오후 5시경 심혁성이 붙잡히자 임성춘(林聖春) 등 200여 명의 시위대는 면사무소로 행진하여 검거된 인사를 풀어주라고 요구하였다. 시위대의 도움으로 심혁성이 풀려나 피신하자 일제 경찰은 추격을 시도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일부 시위대가 이를 저지하였고, 일제 경찰은 칼을 빼서 무력으로 진압하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은선(李殷先)이 일제 경찰의 칼에 찔려 사망하였다. 이에 분노한 이은선의 육촌 이담(李墰)이 이를 규탄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을 규합하였다. 이담은 계양면장 안병혁(安炳赫)과 면서기 이경응(李敬應)에게 통문 작성을 부탁한 후, 완성된 통문을 마을 구장들에게 배포하였다. ‘밤 12시에 계양면사무소 앞에 집합하라’는 통문의 내용에 따라 밤 12시 전원순(全元順)·채규명(蔡奎明)·이공우(李公雨) 등 200여 명과 함께 계양면사무소 앞으로 집결하였다. 면서기 이경응이 오지 않아 분노한 이담 등 100여 명과 함께 선주지리(仙住地里)에 위치한 이경응의 집으로 가서 주택의 바람벽과 대문 등을 파괴하였다. 이후 다시 시위대와 함께 면사무소 앞으로 이동해 만세시위를 벌인 후 해산하였다. 계양면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부천에서는 4월 초까지 계남면(桂南面)·문학면(文鶴面)·용유면(龍游面)·대부면(大阜面)·덕적면(德積面)·영흥면(靈興面) 일대에서 10여 차례에 걸쳐 만세운동이 거행되었다.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10월 2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훼기, 소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미결구류일수 중 9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며 항소하였지만, 같은 해 11월 1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송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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