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崔盛源

崔盛源

1894. 8. 12 ~ 1926. 1. 13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崔盛源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북 영주(榮州)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영주군 풍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4년 8월 12일 경상북도 영주군(榮州郡) 봉현면(鳳峴面) 대촌동(大村洞)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4월 9일 영주군 풍기면(豊基面) 풍기장터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21일 박인서(朴仁緖)·오하근(吳夏根)이 영주면(榮州面)에서 최초로 만세시위를 거행하였다. 4월 4일에는 권창수(權昌銖)·이헌호(李軒頀)·이재덕(李宰德) 등이 하리면(下里面) 은산동(殷山洞) 장터에서 만세시위를 펼쳤다. 4월 3일 오후 2시경 같은 마을에 사는 안용호(安容鎬)가 자택으로 방문해 만세운동 소식을 전하며 그 자리에 있던 남영진(南永鎭)과 함께 만세시위를 전개하자고 권유하였다. 이러한 제안에 동의한 후 안용호·남영진과 함께 풍기면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인근 순흥면(順興面)·안정면(安定面)·단산면(丹山面) 일대에서 장꾼들이 모이는 4월 9일을 거사일로 정하였다. 이어서 안용호·남영진과 함께 종이로 태극기를 제작하며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4월 9일 오전 안용호·남영진과 함께 태극기를 숨기고 풍기장터로 이동하였다. 오후 3시 30분경 장터에 6,000~7,000명의 장꾼과 주민들이 모여 있을 때 안용호·남영진과 함께 풍기헌병주재소(豊基憲兵駐在所) 동쪽에 위치한 쌀시장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러자 장터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 100여 명이 호응하며 만세시위에 동참하였다. 이러한 소식을 들고 출동한 일제 헌병에게 안용호·남영진과 함께 붙잡혀 헌병주재소로 연행되었다. 이후 황정흠(黃鼎欽)·김용준(金容俊)·남상필(南相弼)·황정흠(黃政欽)·이화백(李和伯) 등은 다른 쪽에서 독립만세를 부르고 있다가 이에 호응하는 50여 명과 함께 주재소 입구 동남쪽으로 행진하며 만세시위를 이어갔다. 결국 황정흠 등은 출동한 일제 헌병에게 체포되었고, 시위대도 강제로 해산되었다. 이 일로 1919년 4월 19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