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榮淳
崔榮淳1885. 12. 14 ~ 1950. 3. 1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7)
관련 사건
- · 1919년 거창군 가서면
- · 가북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7) 1885년 12월 14일 경상남도 거창군(居昌郡) 가동면(加東面) 일부리(一釜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2일 거창군 가서면(加西面, 현 가조면)과 가북면(加北面)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소식이 거창지역에 전해지자, 유림을 중심으로 거사를 준비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김병직(金秉直)·어명준(魚命俊) 등은 비밀리에 동지를 규합하고, 3월 20일 가서면 장기리(場基里) 장날을 이용하여 대대적으로 만세시위를 거행하였다. 그러자 장기리 시장에 모인 400~500여 명의 사람들이 뜻을 같이하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서 김병직과 어명준은 가북면 용산리(龍山里)의 헌병분견소 내부로 들어가 비치된 문서를 찢고 유리창과 기물을 파손하였으며, 일제 헌병에게 끝까지 항거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제 헌병과 난투를 벌이며 항거하지만, 폭행당한 후 김병직과 어명준이 거창헌병대로 끌려갔다. 3월 21일 오문현(吳文鉉)·김호(金濩)·어명우(魚命佑)·김채환(金采煥)·신병희(愼炳禧)·어명철(魚命喆)·이병홍(李秉洪) 등 50여 명과 함께 가서면 석강리(石岡里) 정자나무 아래에 모여 대책을 논의하였다. 그리고 3월 22일 거창읍 장날을 기하여 만세시위를 다시 펼치기로 결의하고. 야간을 이용하여 각 마을에 거사 계획을 전달하면서 다음날 11시에 만학정(晩鶴亭) 정자나무 아래로 주민들을 집합하도록 하였다. 이때 오문현·어명철·김채환·김호와 함께 책임대표 5인 중 1인으로 선임되었다. 어명철은 3월 20일 장기리 만세시위를 주도한 어명준의 형이고, 김채환은 김호의 아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만세시위 계획이 거창헌병대에 탐지되어 3월 22일 아침에 오문현 등과 함께 일제 헌병에게 붙잡혔다. 이들의 체포 소식이 전해지자 같은 날 오후 2시 30분경 장기리 만학정(晩鶴亭) 앞에 가서면과 가북면 주민 3,000여 명이 태극기와 몽둥이를 들고 모였고, 구속된 인물들을 구출하기 위해 거창읍으로 행진하였다.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거창읍으로 향하던 시위대는 살피재에서 미리 포진하고 있던 일제 헌병과 충돌하였다. 시위대를 향해 일제 헌병들이 무차별적으로 실탄 사격을 실시하여 5명의 사망자와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때 오문현·어명우·김채환과 함께 면민들의 도움으로 다행히 피신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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