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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元得

崔元得

1900. 12. 11 ~ 1930.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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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崔元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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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울산(蔚山)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울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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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울산군 하상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900년 12월 11일 경상남도 울산군(蔚山郡) 하상면(下廂面) 서리(西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울산군 하상면 병영리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한국의 독립운동은 국내외로 끊임없이 전개되었다. 이후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종전과 더불어 미국 대통령 윌슨의 민족자결주의가 제창되자, 이에 고무되어 1919년 서울에서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다. 3월 1일 만세운동은 곧바로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독립선언서 또한 애국지사들에 의하여 각지로 전달되어 지역의 만세운동이 일어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울산군 병영리의 청년회 간부인 양석룡(楊錫龍)·이현우(李鉉禹) 등과 함께 4월 4일에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주도하였다. 동지를 모으는 한편 태극기와 깃발 등을 제작하며 시위 준비를 하였다. 4월 4일 오전 9시경 청년회원들이 일신학교로 모여들었다. 양석룡이 선두에서 ‘대한독립만세’가 쓰인 큰 깃발을 세우자 이것을 신호로 모두 태극기를 꺼내 흔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가행진을 시작하였다. 이때 울산경찰서에서 일제 경찰과 군인이 출동하여 시위대와 대치하였다. 일제 군경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깃발을 빼앗기고 주도자는 붙잡혔다. 이에 굴하지 않고 다음날인 4월 5일 오후 3시경 일신학교 부근으로 또다시 군중이 모여들어 주재소로 시위행진을 하였다. 시위대는 점차 늘어났고, 일제 군경과 대치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때 일제 군경의 실탄 발포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양일의 시위에 참여한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4월 23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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