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崙琪
崔崙琪1896. 9. 11 ~ 1955. 3. 2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6)
관련 사건
- · 이원군 동면 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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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6) 1896년 9월 11일 함경남도 이원군(利原郡) 동면(東面) 상선리(上仙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1일 이원군 동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원군의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7일부터 본격화되었다. 3월 7일 이원군 천도교 교구장 김병준(金秉濬)은 이원군 동면에 위치한 이원군 천도교구실에서 만남을 가졌다. 이때 개신교 신자 박용해(朴龍海)가 서울에서 가져온 독립선언서를 모임에 참여한 이도재(李道在)·박승룡(朴承龍)를 비롯한 15명의 인사들과 함께 돌려보았다. 이도재 등은 이원군 서면 남문리(南門里)에 위치한 읍내 시장에서 장터가 서는 3월 10일에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으며, 만세시위에 사용할 독립선언서를 작성하였다. 3월 10일 오전 11시 30분경 이원군 서면 읍내에서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시위는 장터에 모인 군중이 시위대에 합류하면서 그 규모가 800여 명에 이르렀다. 김창렬은 시위 참여를 독려하는 연설을 하였으며, ‘조선민족독립단(국)’ 독립기를 들고 시위대의 선두에 선 박승룡은 깃발을 흔들면서 시위대를 인솔하였다. 시위대는 남문리(南門里)와 서문리(西門里)에 위치한 이원군청, 헌병분견소, 공립보통학교, 이원시장 등을 행진하면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3월 11일 남면 차호시장(遮湖市場)과 동면 군선항(群仙港)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이때 동면 군선항에서 진행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날 시위에는 100여 명의 군중이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행진하였다.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일제 군경에 붙잡혔다. 1920년 4월 9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취하하여, 같은 달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었다.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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