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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允植

崔允植

1896. 2. 24 ~ 1919.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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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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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양평(楊平)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양평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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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2014)

관련 사건

  • · 양평군 고읍면
  • · 갈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4) 1896년 2월 24일 경기도 양평군(楊平郡) 강하면(江下面) 전수리(全壽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양평군 고읍면(古邑面)과 갈산면(葛山面)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양평에서 일어난 일련의 만세시위에 양부(養父) 최대현(崔大鉉)과 함께 참여하였다. 양부는 당시 68세의 노인이었으나, 용기 있는 지사(志士)였다. 최대현은 고종이 서거하자, 금곡릉(金谷陵) 앞에서 제사를 지내야 하겠다고 결심하였다. 1919년 2월 13일 양평의 유지들에게 제사 비용을 모금하기 위해 전수리에 거주하는 강모(姜某)에게 문안 작성을 부탁하였다. 문안은 ‘태황제 폐하께서 돌아가셨으매, 그 성은에 보답하기 위하여 능 있는 곳 앞에서 제사를 지내고자 한다. 그에 대해서는 상하의 모든 백성이 그 자력에 따라 금원을 지출함으로써 애도의 뜻을 표시할 수 있는 것인데 각각 응분의 기부를 하기 바란다’라는 내용이다. 같은 날 양부의 집에서 모금 문건 10여 장을 인쇄하였다. 인쇄는 강하면사무소에 있던 등사기를 빌려와서 사용하였다. 그리고 2월 하순 경 양부의 명으로 기부금을 모금하기 위해 이 문건을 양평군 내 11면의 면장에게 배부하였다. 3월 29일 만세를 부르자는 통지가 있어 강하면사무소 부근에 가서 300여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불렀다. 다음 날인 3월 30일에도 양서면(楊西面) 도곡리(陶谷里) 노상에서 약 1,000명의 군중과 함께 만세를 불렀다. 3월 31일 오전 11시에도 양부를 수행하고 강하면사무소 앞에서 3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만세운동은 매일 계속되었다. 4월 1일 오후 4시경 양평군 양서면 도곡리에 있는 양서면사무소와 같은 마을에 있는 헌병주재소 부근에서도 2,0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연호하였다. 양평 지역 만세운동이 최고조에 이른 4월 3일의 시위에도 참여하였다. 양부와 윤기영(尹璣榮)·이보원(李輔元)·신우균(申祐均) 등과 함께 양평군 고읍면에서 강상면(江上面)·강하면·양서면·고읍면의 주민 4,000여 명과 함께 태극기를 휘날리며 ‘조선독립만세’를 절규하였다. 그리고 갈산면 양근리(楊根里) 양근 읍내를 향해 이동하여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제 헌병의 총격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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