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頤集
崔頤集1898. 1. 22 ~ 1964. 3. 2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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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5) 1898년 1월 22일 강원도 강릉군(江陵郡) 강릉면(江陵面) 초당리(草堂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4일 강릉군 강릉면 남대천(南大川)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2일 강릉읍 장날에 만세운동이 전개된 이후 일제는 주민들에 대한 경계와 감시를 강화하였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터는 물론 교회 등에 대해서도 경계를 강화하였다. 특히 4월 2일 만세운동을 주도한 안경록(安慶祿)이 속한 감리교회에 대해서는 더욱 삼엄한 경계를 펼쳤다. 이러한 일제의 감시 분위기 때문에 비밀리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대규모 만세시위를 전개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같은 마을에 사는 최진규(崔晋圭)와 함께 공식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날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펼치기로 계획하였다. 초당리는 해마다 봄에 송정(松亭)·포남(浦南)·옥천리(玉川里) 마을의 농민들과 함께 남대천에서 물길을 수리하는 보(洑) 공사를 실시하였고, 이 해에는 4월 4일로 예정되어 있었다. 최진규와 함께 이날 일제 경찰의 감시를 받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펼치기로 결정하였다. 4월 4일 아침 최진규와 함께 남대천으로 향하였다. 인근 네 개 마을의 농민들이 모두 모여 보수 공사를 마치고 귀가할 때 최진규와 함께 농민들에게 만세운동을 펼칠 것을 제의하였다. 최진규 등의 제의에 같은 마을에 사는 최영방(崔永邦)과 박장실(朴章實) 등 200여 명의 농민들이 호응하였다. 많은 사람들의 동참을 얻어, 최진규와 함께 군중을 주도하며 만세시위를 펼쳤다. 군중은 삽과 괭이·가래를 들고 소리 높여 ‘대한독립만세’를 연호하며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일제는 경찰과 군인까지 동원하여 시위대를 폭력으로 저지하였다. 이에 20여 명이 부상당하고 현장에서 주도자 등이 붙잡혔다. 또한 일제 경찰은 다음날까지 만세운동 관련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수색을 단행하여 많은 사람들을 붙잡았다. 이때 일제 경찰에게 만세운동 주도자로 붙잡혔다. 1919년 4월 10일 함흥지방법원 강릉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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