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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長富

崔長富

1901. 4. 14 ~ 1945.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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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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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영변(寧邊)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영변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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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05)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5) 1901년 4월 14일 평안북도 영변군(寧邊郡) 영변면(寧邊面) 서부리(西部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최준(崔峻)과 한자를 달리한 최장부(崔丈夫·崔丈富)를 썼다. 1919년 무렵에는 평북 희천군(熙川郡) 남면(南面) 원명동(圓明洞)에 거주하였으며, 서울에서 연희전문학교에 재학하고 있었다. 1919년 3월 3일 영변군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을 기획하였다. 평안북도에서는 1919년 3월 1일 의주(義州)와 선천(宣川)에서 만세시위가 벌어졌고, 평안남도에서도 평양(平壤)을 비롯하여 각지에서 3월 1~2일에 걸쳐 시위가 발생하면서, 이미 평안도 곳곳에는 만세운동에 관한 소식이 널리 퍼져 나가고 있었다. 이에 고향인 영변군으로 가 기독교 학교인 숭덕학교(崇德學校)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있던 이윤재(李允宰)를 비롯하여 유병집(柳秉楫)·장동순(張東淳) 등과 함께 독립선언서 40여 장을 등사하였다. 3월 3일 영변 읍내 장날을 맞이하여 사람들이 읍내에 모여들자, 등사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제 헌병에게 붙잡혔다.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1919년 6월 17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재판과정에서 독립운동은 조선 민족의 의무이며, 따라서 죄가 될 수 없다.”라고 주장하면서 재차 상고하였지만, 그해 7월 13일 고등법원에서 최종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이후 1924년 1월 27일 이윤재와 함께 마산면려청년회(馬山勉勵靑年會)에서 주최한 정음강연회(正音講演會)에 참석해 「말과 글」이라는 주제로 강연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윤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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