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周岳
崔周岳1879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3)
관련 사건
- · 함경북도 성진군 학상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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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3) 함경북도 성진군(城津郡) 학상면(鶴上面) 왕덕동(王德洞)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79년생으로 추정된다. 성진군의 만세운동은 기독교를 중심으로 준비되었는데, 함흥(咸興)의 사립영생학교(私立永生學校) 졸업생인 허용필(許容弼)이 독립선언서를 전달하면서 시작되었다. 학성면(鶴城面)의 욱정교회(旭町敎會) 목사인 강학린(姜鶴麟)은 제생병원(濟生病院)에서 성진지역 기독교의 중심인물인 강희원(康禧元)·김상필(金相弼)·김원배(金元培)·배민수(裵敏洙)·서재영(徐在英)·안성윤(安聖允)·이효근(李孝根) 등과 성진의 만세시위에 대해 논의하였다. 3월 10일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정하고 3월 7일 로버트 그리어슨(Robert Grierson) 목사를 방문하였다. 그리어슨 목사는 사립보신학교(私立普信學校)의 등사기로 독립선언서와 격문 30,000장을 인쇄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3월 10일 10시 제동병원(濟東病院) 앞 광장에는 욱정교회 교인들을 중심으로 5,000여 명이 운집하였다. 강학린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참석자들은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만세시위에 적극 참여하였다. 오후 3시 반 경에는 사립보신학교 학생들과 기독교인 200여 명이 참여한 제2차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이에 일제 경찰은 시위대를 무력으로 해산시키려 하였고, 시위대는 이에 맞서 투석전을 전개하였다. 그 과정에서 일제 경찰 5명이 부상당했다. 이에 일제 경찰은 보병 제37여단 나남(羅南)부대에 지원을 요청하였고, 그날 밤 기병 장교와 하사 등 14명이 성진으로 파견되었다. 이후 강학린·안성윤 등 주도자들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7월 28일 청진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지만, 9월 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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