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圭映
秋圭映1901. 8. 21 ~ 1977. 3. 2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동래군 동래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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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901년 8월 21일 경상남도 동래군(東萊郡) 동래면(東萊面) 복천동(福泉洞, 현 부산시 동래구 복천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동래고등보통학교 3학년에 재학 중 3월 31일 동래시장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경남 동래면에서는 1919년 3월 10일경 동래고보 출신 곽상훈(郭尙勳)이 독립선언서를 몰래 가지고 고향으로 내려온 것과 함께 동래고보 4학년생인 엄진영(嚴進永)·김귀룡(金貴龍)·고영건(高永建)·김인호(金仁浩) 등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에 대한 모의가 시작되었다. 당시 3학년에 재학 중이었는데, 동기생인 김원룡(金元龍)·김기삼(金琪三)·손영수(孫永壽)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계획하는데 참여하였다. 이후 동래고보 수학교사 이환(李環)까지 힘을 합쳐 만세시위에 대한 준비를 해 나갔다. 학교 등사판을 이용하여 독립선언서를 500여 장을 복사하고, 태극기와 깃발을 제작하였다. 그리고 거사일을 3월 31일 동래읍 장날 오후 2시로 정하였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거사 당일 동래고보 학생들과 함께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품에 품고 동래 군청 앞으로 갔다. 약속된 시간이 되자 엄진영이 선봉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그러자 주위의 학생들과 장꾼들도 일제히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불렀다. 준비한 독립선언서와 태극기가 뿌려지고, 장터는 삽시간에 만세소리로 진동하였다. 그러나 곧 일제 경찰과 군인 80여 명이 들이닥쳐 무차별 발포를 시작하였다. 그 자리에서 동지들과 함께 붙잡혔다. 이후 4월 30일에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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