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聖培
秋聖培1901. 2. 11 ~ 1927. 11. 1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3)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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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3) 1901년 2월 11일 충청남도 부여군(扶餘郡) 세도면(世道面) 청포리(菁浦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추남구(秋南求)·추도쇠(秋道釗)이다. 1919년 3월 10일 강경면(江景面) 장터 만세시위의 준비 과정에서부터 참여하였다. 사립 창영학교 교사 엄창섭(嚴昌燮)은 3월 초 고향인 전라북도 익산(益山)에 갔다가 3월 5일경 고향 후배인 군산(群山) 영명학교의 학생 강금옥(姜金玉)으로부터 전국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만세운동의 상황을 전해 들었다. 이에 엄창섭은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을 결심하고, 강경으로 돌아와 3월 6~7일경 우선 고상준(高相俊)·추병갑(秋炳甲)과 협의하여 강경읍의 장날인 3월 10일을 거사일로 결정하고 준비에 착수하였다. 엄창섭 등은 한지, 물감 등을 구입하여 창영학교에 비밀리에 모여 태극기를 제작하기 시작했는데, 예상보다 많은 일손이 필요하여 주변의 지인들에게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엄창섭 등에게 만세운동 준비에 참여할 것을 권유받고, 그 취지에 동의하여 김종갑(金鍾甲)·서삼종(徐三鍾)과 함께 동지로 참여하였다. 창영학교에 모여서 엄창섭 등과 함께 10일 아침까지 태극기 200여 개를 제작하였다. 10일 아침 서삼종이 태극기를 가마니에 넣어 옥녀봉(玉女峰)으로 운반하고, 나머지 동지들은 주변에 믿을 수 있는 지인들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의 계획을 알려 옥녀봉으로 모일 것을 당부하였다. 오후 3시경 정기섭(鄭沂燮)·한규섭(韓圭燮) 등 사전에 연락받은 주민 300여 명이 옥녀봉에 모였다. 이에 엄창섭은 강경장터로 가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자고 옥녀봉에 모인 주민들에게 호소하였다. 엄창섭 등과 함께 주민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고, ‘조선독립만세’를 거듭 외치며 강경장터로 향하였다. 엄창섭의 지휘에 따라 일본인들의 집단 거주지인 본정통(本町通)을 경유하여 강경장터와 읍내 곳곳을 행진하였다. 곳곳에서 많은 주민들이 만세시위에 합류하여 수백 명의 규모가 되었다. 선두에서 ‘조선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일제 경찰은 만세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당시 일제 육군기념일 행사를 하고 있던 재향군인과 소방조까지 동원하여 만세시위의 주도자들을 붙잡았다. 이때 엄창섭 등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4월 1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해 6월 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동일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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