表永俊
表永俊1884. 4. 26 ~ 1948. 11. 2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4)
관련 사건
- · 1919년 청양군 정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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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4) 1884년 4월 26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정산면(定山面) 대박리(大朴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한자를 달리한 표영준(表榮俊)이다. 1919년 4월 5~6일 정산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정산면의 만세시위는 백곡리(白谷里)의 홍범섭(洪梵燮)이 서울에서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귀향한 후 준비되기 시작하였다. 홍범섭은 임의재(任毅宰)·윤석희(尹錫禧)·홍세표(洪世杓)·박상종(朴商鍾) 등과 의기투합하고 정산면 만세시위를 추진하였다. 정산시장의 장날인 4월 5일 오후 3시경부터 홍범석 등은 면사무소 소재지인 서정리(西亭里) 시장에서 주민들에게 태극기를 배포하며 만세시위를 거행하였다. 그러자 일제 헌병이 출동하여 즉시 시위대의 해산을 명령하면서, 만세시위를 주도한 30여 명을 청양헌병분견소로 연행하였다. 평화적인 만세시위에 대한 일제 헌병의 탄압에 분노하여, 시장에 나와 있던 다른 주민들과 함께 거사에 동참하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700여 명으로 확대된 시위대와 함께 헌병주재소로 이동하여 연행자 석방을 요구하며 격렬하게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러자 일제 헌병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였고, 선두에서 시위대를 이끌던 정산향교(定山鄕校) 직원(直員) 권흥규(權興圭)가 총격에 맞아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다음날인 4월 6일 권흥규 시신을 목면(木面) 안심리(安心里)로 운구하기 헌병주재소로 갔다. 운구행렬에 참여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정산의 만세시위는 더욱 큰 규모로 발전하였다. 특히 운구가 지나가는 길목에 위치한 각 마을마다 멈춰서 상여를 대고 노제를 올렸으며, 이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시위대에 합류하였다. 그래서 지곡리(池谷里)를 경유할 즈음에는 시위대의 규모가 1,000여 명으로 확대되었고, 이후 운구행렬에 참여한 사람들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연창하고 태극기를 흔들면서 행진하였다. 일제는 정산 헌병파견대 외에 청양군과 공주(公州)에 주둔하고 있던 헌병들까지 정산으로 파견하였다. 그리고 공주에서 출동한 일제 헌병들이 도착해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는 운구행렬을 보자마자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하였다. 이로 인해 권흥규의 조카딸 최윤안(崔胤安)과 김국삼(金國三)·유행길(柳行吉) 등이 사망하고, 많은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정산면 만세시위에 적극 가담했다는 이유로 160여 명과 함께 일제 헌병에 붙잡혔다. 같은 해 4월 24일 청양헌병분견소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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