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圭燮
韓圭燮1898. 2. 7 ~ 1979. 11. 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7)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7) 1898년 2월 7일 충청남도 논산군(論山郡) 강경면(江景面) 황금리(黃金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강경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강경면 만세시위는 사립 창영학교(昌永學校) 교사 엄창섭(嚴昌燮)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919년 3월 5일 엄창섭은 고향인 전라북도 익산군(益山郡) 웅포면(熊浦面) 대붕암리(大鵬岩里)에서 고향 후배인 군산(群山) 영명학교(永明學校) 학생 강금옥(姜金玉)으로부터 만세운동의 상황을 자세하게 전해 들었다. 이에 엄창섭은 자신도 만세운동을 일으키겠다고 결의하고 강경으로 돌아와 3월 6~7일경부터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우선 고상준(高相俊)·추병갑(秋炳甲)에게 만세운동의 취지를 설명하고 함께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고상준 등과 함께 만세시위 날짜를 강경읍의 장날인 3월 10일로 계획하고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구체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김종갑(金鍾甲)·서삼종(徐三鍾)·추성배(秋聖培) 등이 동지로 동참하였다. 김종갑 등은 비밀리에 창영학교에서 만세시위 준비를 함께 하여 10일 아침까지 태극기 200여 본을 제작하였다. 3월 10일 아침 서삼종이 태극기를 가마니에 넣어 옥녀봉(玉女峰)으로 운반하고, 나머지 동지들은 주변에 만세시위 계획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이날 오전 김종갑·추성배 등을 통해 만세운동에 동참을 결의한 정기섭(鄭沂燮)으로부터 만세시위 계획을 전해 들었다. 그 취지에 크게 공감하여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결의하고 정기섭 등 다른 주민들과 함께 오후 3시경 옥녀봉 모임에 참여하였다. 강경 장터로 가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자는 엄창섭의 연설을 듣고, 다 함께 호응하여 나눠받은 태극기를 흔들며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강경 장터를 향해 행진하였다. 행진하는 길목마다 많은 주민들이 만세시위에 공감하여 동참해 왔다. 강경 장터에 도착했을 때는 시위대의 규모가 수백 명이 되었다. 엄창섭의 지휘에 따라 일본인들의 집단 거주지인 본정통(本町通)을 경유하여 강경 장터와 읍내 곳곳을 활보하며 시위대의 선두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러한 활동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4월 1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해 6월 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