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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道洙

韓道洙

1901. 9. 27 ~ 1942.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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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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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임실(任實)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임실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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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청웅면 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1년 9월 27일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청웅면(靑雄面) 구고리(九臯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16·17·19일 임실군 청웅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마을 주민 이강세(李康世)·박용식(朴庸植)·한기수(韓淇洙)와 함께 구고리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하였다. 이때 다른 마을 주민 이기섭(李起燮)·이성의(李聖儀)·최종수(崔宗洙)도 시위 주도자들의 의견을 따라 만세시위에 참여하기로 약속하였다. 1919년 3월 16일 저녁 10시경 이강세·박용식·한기수 등과 함께 청웅면 구도리 중앙에 있는 큰 개오동나무 밑에 모였다. 먼저 시위 주도자 3인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크게 부르자, 마을 사람들이 만세소리를 듣고 따라 나왔는데 그 수가 약 2백 명에 이르렀다. 이때 모인 수백 명의 마을 사람들은 시위 주도자들을 따라 조선독립만세를 불렀다. 그리고 모인 수백 명의 마을 주민들을 이끌고 구도리 일대를 1바퀴 돌면서 만세를 부른 후 스스로 해산하였다. 이후 시위 주도자들과 함께 3월 17일·19일에도 같은 방식으로 개오동나무 밑에 모여 구도리 주민들을 이끌고 조선독립만세를 부르고 구도리 일대를 행진하며 만세시위를 적극적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만세시위가 끝난 후 일제 경찰의 검속으로 다른 시위 주도자들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4월 16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해 5월 1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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