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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相喆

韓相喆

1891. 8. 30 ~ 1936.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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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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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洪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홍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1919년 홍성군 장곡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891년 8월 30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장곡면(長谷面) 화계리(花溪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7일~8일에 일어난 장곡면 만세시위와 장곡면사무소 습격을 주도하였다. 장곡면에서는 4월 4일 윤형중(尹衡重)·윤익중(尹益重)·윤낙중(尹樂重) 삼형제의 주도로 시작된 만세시위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독립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서울의 경신학교(儆新學校)에 재학 중이었던 윤익중과 윤낙중은 3월 1일 탑골공원의 독립선언에 참가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들은 3월 20일 독립선언서 100장을 가지고 귀향한 후, 가족과 마을 주민들이 만세운동에 참가하도록 설득하여 4월 4일 화계리·광성리(廣城里)·신풍리(新豊里)의 주민들과 매봉산에 올라 횃불을 올리고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4월 7일부터 8일까지는 가송리(佳松里)의 김동하(金東河)를 중심으로 격렬한 독립만세시위가 전개되었는데, 이때 김동하·김동완(金東完)·김용숙(金容肅)·이화춘(李化春)·김차제(金次濟) 등과 협의하여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김동하 등과 함께 7일 화계리 주민들에게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고, 이에 동참한 주민들을 지휘하여 마을 앞산에서 조선독립만세를 부르고 면사무소 소재지인 도산리(道山里)로 행진하였다. 면사무소로 가는 도중 광성리·가송리 등의 주민들이 합류하였고, 주민들을 지휘하여 면사무소의 뒷산 응봉산(鷹峰山)에 올라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는 연설을 하고 독립선언서의 취지를 설명하였다. 이에 주민들은 북을 치면서 호응하여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규탄 집회를 마친 뒤 김동하와 함께 주민들을 지휘하여 면사무소로 행진하였다. 김동하가 만세시위에 면사무소 직원이 한 명도 동참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분노하였고, 면사무소를 부수라고 외치며 돌을 던지기 시작하였다. 이에 김동완·김용숙·이화춘·김차제 등과 함께 시위대의 선두에서 투석하였다. 이에 다른 주민들도 돌과 몽둥이 등으로 정문 기둥을 부수고 유리창을 깨뜨리는 등 면사무소의 각종 시설, 기물, 문서 등을 파괴하였다. 다음 날 8일에도 밤 11시경 전날의 만세시위에 참여한 주민, 학생 등 60여 명과 함께 도산리에 모여 면사무소에 대한 공격을 계속하였다. 만세시위 소식을 접하고 출동한 일제 경찰에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5월 30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와 소요죄로 징역 6월과 벌금 30원 및 노역장(勞役場) 유치 30일의 처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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