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相弼
韓相弼1879. 8. 21 ~ 1919. 4. 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1919년 천안군 병천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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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1879년 8월 21일 충청남도 천안군(天安郡) 갈전면(葛田面) 매성리(梅城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4월 1일 유관순(柳寬順) 등이 주도한 병천(竝川) 아우내장터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병천 아우내장터 만세시위는 천안 병천과 수신(修身)·성남(城南) 지역에서 준비되던 두 갈래의 만세운동이 하나로 합쳐져 대규모 만세운동이 되었다. 병천의 독립만세운동 준비는 3월 13일 서울에서 귀향한 유관순(柳寬順)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유관순은 3월 16일 아버지 유중권(柳重權)과 숙부 유중무(柳重武) 및 조인원(趙仁元)·김구응(金球應)·이백하(李伯夏) 등 지역의 유력 인사 2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서울의 만세운동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그리고 유관순은 병천에서도 만세운동을 전개할 것을 제안하여 지역의 인사들로부터 적극적인 동의와 지지 속에 만세운동 준비에 착수하였다. 만세운동의 거사일은 아우내 장터의 장날인 4월 1일로 결정되었다. 수신면과 성남면 지역에서는 3월 29일부터 만세운동이 계획되었다. 고종의 인산(因山)에 참례했다가 만세운동을 목격하고 귀향한 이순구(李旬求)와 홍일선(洪鎰善)·김교선(金敎善) 등을 시작으로 한동규(韓東圭)·박영학(朴榮學)·이백하 등이 중심이 되어 만세시위를 결의하였다. 한동규 등도 아우내 장터의 장날인 4월 1일을 만세운동의 거사일로 결정하고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이백하는 병천과 수신·성남 두 지역의 만세운동 준비에 모두 관여한 인물이었으나, 두 지역 모두에서 비밀을 유지하고 있었다. 두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준비되던 독립만세운동 계획은 병천 쪽에서 연락책으로 활동하였던 김상훈(金相勳)을 통해 통합되었다. 유관순 등 만세운동의 기획자들은 예정대로 4월 1일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할 것임을 사전에 연락하기 위해 준비 모임에서 약속한 대로 3월 31일 밤 매봉산을 중심으로 천안으로 가는 길목인 수신면 산마루, 충청북도 진천(鎭川)의 고갯마루에 봉화를 올렸다. 전날 밤 매봉산의 봉화를 확인하고, 만세시위에 참여하기로 결의하여 4월 1일 아침 아우내 장터를 향해 집을 나섰다. 장터로 향하는 길목에서 사람들에게 참여를 호소하며 태극기를 배포하고 있던 조병호(趙炳鎬)·조만형(趙萬衡)·박봉래(朴鳳來) 등으로부터 태극기를 받아 옷 속에 숨기고 장터로 들어갔다. 오후 1시경 장터의 중심부에 대형 태극기가 세워졌다. 그 직후 조인원이 군중 앞으로 나와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뒤따라 유중권·유중무·조병호 등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것을 신호로 일제히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품속에 감추었던 태극기를 꺼내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대규모 독립만세시위가 발생하자, 병천 헌병주재소의 고야마(小山) 소장 이하 5명의 일제 헌병들이 출동하여 시위 해산을 명령하였다. 그러나 3,000여 명의 만세시위대는 해산 경고를 무시하고 만세시위에 참여한 주민들과 함께 더욱 소리 높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아우내 장터의 곳곳을 행진하며 만세시위를 계속적으로 전개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제 헌병은 만세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였고, 이로 인해 김상헌(金相憲)이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만세시위에서 사망자가 발생하자, 일제 헌병의 만행에 분노하여 다른 주민들과 함께 일제 헌병들을 쫓아가 주재소 습격에 참여하였다.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고, 일제 헌병의 발포에 격렬하게 책임 추궁을 하였다. 분노한 주민들로 인해 시위의 양상이 격화되기 시작하자, 조인원이 나서서 평화시위의 의미를 강조하며 시위대를 진정시켰다. 그러나 일제 헌병의 발포와 폭력적 탄압이 다시 시작되었다. 일제 헌병의 칼에 유관순은 부상당하였고, 부친 유중권은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이에 김교선·한동규·이백하·이순구·김상철(金相喆) 등의 지휘에 따라 100여 명의 주민들과 함께 다시 주재소로 가서 기물을 파손하고, 유치장의 벽을 허물어 구금자를 석방하였다. 주재소를 습격하는 동안 병천 헌병의 지원요청을 받고 천안에서 급파된 고우(甲) 대위 이하 철도엄호대 6명이 오후 4시경 아우내장터에 도착하였다. 도착하자마자 일제 헌병들과 함께 만세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발포하였다. 이 과정에서 만세시위대의 선두에서 일제 헌병의 탄압에 저항하다가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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