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哲瑛
韓哲瑛1897. 2. 17 ~ 1964. 10. 1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3)
관련 사건
- · 제주도 신좌면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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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3) 1897년 2월 17일 제주에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한석영(韓晳瑛)이다. 본적은 제주도(濟州島) 신좌면(新左面) 함덕리(咸德里)이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21일에서 24일에 걸쳐 제주도 신좌면 일대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제주도 신좌면 만세운동은 서울에서 유학중이던 김장환(金章煥)이 만세운동을 목격하고,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3월 16일경 제주도로 돌아오면서 시작되었다. 이에 김시범(金時範)·김시은(金時殷) 등 14명이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결의하고 3월 21일 오전 10시경, 조천면(朝天面) 미밋동산에 약 500여 명이 모여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부르며 조천 비석거리까지 행진하였다. 이후 신촌리(新村里) 일대에서 일제 헌병과 대치하다가, 일제 헌병의 총칼에 주모자 9명 등 13명이 연행되었다. 다음날인 22일에도 조천면 장터에서 200여 명이 모여 전날 검속(檢束)된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만세운동을 벌여 주도자 2명 등이 붙잡혔다. 23일에는 100여 명이 모여 조천면 일대에서 만세를 부르다가 함덕리 방향으로 행진하였는데, 함덕리에서 청년과 주민들이 합류하여 그 세가 800여 명으로 증가하였다. 이때 사람들이 모여 죽기를 각오로 독립만세를 외치니, 일제 헌병들은 다시 주도자 이문천(李文千)·백응선(白膺善)을 비롯하여 8명을 붙잡았다. 이어 24일에는 조천 5일 장날을 이용하여 김년배(金年培)를 중심으로 1,500여 명에 달하는 군중이 조천 장터에서 만세시위에 동참하였다. 이날의 시위에서 다시금 김년배를 비롯한 시위 주도자들이 체포되어 조천면 일대의 만세운동은 끝을 맞이하게 되었다. 자료로 보아 3월 23일의 시위에서 함덕면 방향으로 행진하였을 때 참여하였거나, 가장 규모가 컸던 3월 24일의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일제 헌병에게 붙잡힌 것으로 보인다. 광주지방법원 제주지청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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