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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春山

韓春山

1884. 6. 6 ~ 1948.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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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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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瑞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서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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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4)

관련 사건

  • · 대호지면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4) 1884년 6월 6일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팔봉면(八峰面),에서 태어났다. 이후 대호지면(大湖芝面, 현 당진시 대호지면) 마중리(馬中里)로 이주하였다. 이명은 충산(忠山)이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고종(高宗) 장례에 참여하면서 남주원(南柱元)·이두하(李斗夏) 등 도호의숙(桃湖義塾) 유생들은 서울에서 만세운동을 접할 수 있었다. 이후 서산 지역에도 만세운동 소식이 전해지면서 만세시위 열기가 고조되었다. 서산군 대호지면에서는 면장 이인정(李寅正)을 비롯한 면사무소 직원들이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이인정 등은 인근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뒤 대호지면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동지로 규합하여 독립운동추진위원회를 결성해서 만세운동을 추진하였다. 정미면(貞美面) 천의리(天宜里)의 천의장터를 만세시위의 장소로 선정하고, 그 장날인 4월 4일을 거사일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다수의 주민들을 만세시위에 참여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도로수선병목정리(道路修繕並木整理)의 건」이라는 공문을 만들어 각 마을로 보내면서, 도로 보수를 위해 한 집에 한 명씩 4월 4일 면사무소로 모이라는 내용을 전달하였다. 4월 4일 아침 다른 주민들과 함께 대호지면사무소 앞에 모였다. 이 자리에서 면장 이인정으로부터 주민들을 집결시킨 실제 목적은 만세운동이니 동참하라는 연설을 듣고, 이에 공감해 만세시위에 참여하여 천의장터로 행진하였다. 시위 대열의 선두에는 대형 태극기가 앞장섰다. 행진하는 도중 만세시위를 목격한 다른 주민들이 계속 동참하여 시위대는 1,000여 명으로 확대되었다. 장터에 도착하여 다시 한번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장터의 곳곳을 행진하며 ‘조선독립만세’를 연창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일제 경찰은 대규모 만세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당진경찰서(唐津警察署)의 경찰력을 지원병력으로 급파하였다. 장터의 한쪽에서 대형 태극기를 발견하고, 박탈하려는 과정에서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여 4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에 분노하여 천의주재소 습격에 참여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주재소를 향해 돌을 던져 시설과 기물을 부수는 등 주재소를 완전히 파괴하고, 해산하였다. 이날의 만세시위 이후 대호지면으로 출동한 홍성헌병수비대에 붙잡혀 즉결심판에 넘겨졌다. 1919년 4월 24일 서산경찰서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태(笞) 90도(度)를 받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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