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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泗哲

洪泗哲

1898. 6. 14 ~ 1959.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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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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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公州)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공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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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0)

관련 사건

  • · 1919년 공주군 정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0) 1898년 6월 14일 충청남도 공주군(公州郡) 정안면(正安面) 운궁리(雲弓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홍점산(洪點山·洪点山)이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4월 1일 공주군 정안면 광정리(廣亭里)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이 만세운동은 정안면 석송리(石松里)에 거주하던 유림 이기한(李綺漢)과 이병억(李秉億)이 주도하여 일으켰다. 이기한 등은 석송리의 주민을 향하여 “모두 나를 따르라”라고 호소하며 시위를 주도하였고, 주민 20~30명은 ‘대한독립만세’를 연호하며 운궁리를 거쳐 정안면사무소와 정안주재소가 있는 광정리로 이동하였다. 이 과정에서 운궁리에 거주하던 최범성(崔範聲)·윤원식(尹元植)·김삼룡(金三龍)·김억쇠(金億釗)·박승익(朴勝翊)·황타관(黃他官)·이돈석(李敦錫)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 마침 운궁리 주민들은 부역으로 나무 심기 작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길이었다. 운궁리 주민들과 함께 작업 도구인 삽·곡괭이·쇠스랑 등을 가지고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정안 시장으로 이동하여 300여 명의 군중을 이끌고 일본인 거주지와 정미소 앞에서 독립만세를 외친 후, 정안주재소를 공격하였다. 이때 3~4명이 쇠스랑·곡괭이를 이용하여 주재소를 파괴하였다. 특히 자신의 머슴으로 있던 황타관이 주재소 유리창을 발로 걷어차 부수고, 이돈석이 주먹으로 현관 유리창살을 파괴할 때, 지게받이 막대기로 주재소 건물을 타격하였다. 이때 막대기가 부러졌으나 꺾인 막대기를 들고 끝까지 시위에 참여하였다. 또한 인근에 있는 일본인 주택으로 이동하여 창문과 유리를 파괴하였다. 한편, 주재소가 공격당하였다는 급보를 접한 공주경찰서에서는 순사대를 정안면에 급파하였다. 그리고 순사대가 석송리 주막 김원일(金元日) 집 앞에 도착했을 때, 광정리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한 후 귀가하던 시위대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시위대는 자동차를 가로막고 ‘대한독립만세’를 크게 외쳤다. 이 과정에서 격투가 벌어졌고, 경찰의 발포로 이상림(李相霖)이 사망하고 1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뒤이어 이기한 등과 함께 수백 명의 주민을 이끌고 또다시 정안주재소에 갔다. 그리고 밤늦게까지 횃불을 올리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만세운동 직후 일제 경찰에 붙잡혔고, 이른바 소요죄와 보안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8월 17일 예심을 거쳐, 같은 해 9월 2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2월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고, 그해 11월 1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0월(미결구류일수 중 100일 본형 산입)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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