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㻐玉
洪玉1888. 7. 25 ~ 1945. 12. 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독립장(1977)
관련 사건
- · 수원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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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장(1977) 1888년 7월 25일 경기도 수원군(水原郡, 현 화성시) 송산면(松山面) 사강리(沙江里)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한문을 배웠고 남양사립학교를 졸업하였다. 1911년 11월 경기도의 헌병보조원이 되었고, 1914년 3월까지 근무하였다. 1916년 2월 파주군(坡州郡) 임진면(臨津面) 서기로 일하다가 1918년 1월 면직하였다. 그해 12월에는 수원군 송산면 서기가 되었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거행된 만세운동이 신문 등을 통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3월 11일경 『매일신보』를 통해 형인 홍면옥(洪冕玉)과 함께 만세운동 소식을 접하였다. 3월 26일 송산면 사강리 구장인 홍명선(洪明善)의 집으로 주민들이 세금을 납부하려고 모여 들었다. 이를 기회로 홍효선(洪孝善)·홍면옥 등이 주도하여 송산면사무소에서 만세를 외치자 송산면사무소 부근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3월 28일 사강 장날을 기하여 전개된 만세시위에 홍면옥과 함께 참여하였다. 이날 10시경 사강장터에 모인 사람들을 중심으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고, 11시경 홍면옥·홍효선·김창준(金昌俊)·왕광연(王光演)·홍태준(洪泰俊)·홍문선(洪文善) 등과 함께 만세를 불렀다. 오후 2~3시경 동네 주민들과 사강장터에 있던 인근 마을 사람들을 모아 만세를 부르자며 권유하면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고, 사강주재소 앞에서 1,000여 명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 만세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이 늘어나자 일제 순사들은 시위대의 해산을 명령하였다. 이 과정에서 홍면옥이 총격에 맞아 부상을 입었다. 홍면옥을 업고 면사무소로 가 응급조치를 하였으며 형을 죽이려 한 일제 순사를 처벌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후 문상익(文相翊)·임팔룡(林八龍)·강업동(姜業同)·왕국신(王國臣)·박영순(朴榮順) 등과 함께 총을 발포한 일제 순사를 도로에서 포위하여 처단하였다. 홍면옥의 치료를 위하여 이동하다가 수원경찰서 일제 경찰에게 붙잡혔다. 1920년 4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소요죄 등으로 징역 1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며 항소하였으나, 그해 5월 3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다시 징역 12년을 받았다. 재차 상고하였으나, 그해 7월 5일 고등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김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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