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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鎭禹

崔鎭禹

1913. 4. 5 ~ 1995.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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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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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복군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서울특별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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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조선의용대
  • · 한국광복군 제1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중일전쟁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913년 4월 5일 서울 서대문구 행촌동(杏村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최진동(崔鎭棟)·최희(崔喜)이다. 1925년 상하이(上海)로 건너가 1934년 난징(南京) 중앙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하였다. 조선의용대와 한국광복군 제1지대에서 활동하였다. 1925년 부친 최희관(崔喜觀)을 따라 상하이(上海)로 건너가 1934년 난징(南京) 중앙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한 후 공병보충단(工兵補充團)에 근무하였다. 1937년 중국군 제21집단군에 배속되어 한적사병(韓籍士兵)의 귀순공작을 담당하였다. 중국군의 편제는 1개 전구(戰區)에 통상 3개의 집단군이 있었고, 1개 집단군은 3개의 군(軍)으로, 1개의 군은 3개의 사단으로 편성되었다. 중일전쟁이 일어난 이후 중국군은 대일항전의 지휘계통을 정비하면서 일본군과의 접전지역을 중심으로 10개의 전구(戰區)와 2개의 특별 전구를 설정하였다. 그 후 조선의용대에 합류하였다. 조선의용대는 1938년 10월 창설 당시 100여 명의 규모였고, 2개 구대로 편제되었고, 총대장은 김원봉(金元鳳), 제1구대장 박효삼(朴孝三), 제2구대장은 이익성(李益星)이었다. 1939년 1월 대원의 규모가 140여 명으로 확대되었다. 주요 활동 방향이 한중연합전선을 통한 대일항전에 맞춰져 있어, 대원들은 중국 각 전구에 구대 단위로 파견되어 주로 선전공작을 수행하였다. 중국 각 전구에 분산되어 있던 조선의용대 대원들은 1940년 10월부터 뤄양(洛陽)에 집결한 후 1941년 황하를 건너 화북지역으로 진출하였으며, 1942년 연안 측과 연결하여 조선의용군의 주축이 되었다. 이후 조선의용대는 중국군사위원회의 명령에 따라 한국광복군에 합류하여 제1지대가 되었다. 1942년 7월 광복군에 편입된 조선의용대 대원은 화북으로 진출한 대원을 제외한 50명 정도였다. 이러한 조선의용대의 거취에 따라 1942년 7월 한국광복군 제1지대에 편입하여 지대본부 요원으로 활동하던 중 1945년 8월 광복을 맞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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