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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東植

崔東植

1926. 1. 27 ~ 2005.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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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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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산(慶山)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경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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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결심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대왕산죽창의거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26년 1월 27일 경상북도 경산군(慶山郡) 남산면(南山面) 사월리(沙月里)에서 태어났다. 일제 말기에는 일제의 강요에 의해 영산동식(永山東植)이라는 창씨명을 쓰기도 하였다. 1944년 대왕산을 거점으로 징용·징병을 거부하는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일제는 태평양전쟁 말기가 되자 더욱 극심하게 징용·징병 등을 통한 인적동원을 실시하였다. 그러자 이에 저항하기 위해 1944년 7월 남산면 일대의 청년 등 29명과 함께 대왕산(大王山)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리고 다른 참여자들과 함께 대왕산으로 들어가 죽창으로 무장하고 일제에 대항하였다. 그래서 이들이 전개한 항일투쟁을 ‘대왕산죽창의거’라고도 부른다. 같은 해 7월 참여자들과 함께 세 차례에 걸쳐 회합하면서 항일투쟁에 대한 방법을 논의하였다. 제3차 회의에서 경사가 가파르고 옛 성터가 남아있던 대왕산을 최적지로 판단하여 의거의 근거지로 사용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7월 26일 입산을 시작해 요새를 구축하고 조직을 정비하였다. 먼저 결사항전을 결의하며 조직의 이름을 결심대(決心隊)라고 정하였고, 3개 소대와 헌병 등으로 조직을 편성하였다. 안창률(安昌律)을 대장으로 선임하는 등 간부진을 구성할 때 참여자들 가운데 비교적 젊었기 때문에 헌병을 맡기로 하였다. 이어서 전쟁 말기 징용·징병에 결사 반대한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당시 새롭게 건축하고 있던 주재소를 파괴하기로 1차 목표를 세운 후 세부계획을 수립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를 입수한 일제 경찰이 검거작전을 실시하였다. 그러자 대왕산 정상에서 죽창을 들고 돌을 던지며 일제 경찰에 저항하였고, 이후 인근 산으로 근거지를 옮겨다니며 계속 항전하였다. 하지만 8월 9~10일 식량 확보를 위해 대원들과 하산하는 과정에서 일제 경찰에게 붙잡혔다.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어 옥고를 겪다가 광복이 된 후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황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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