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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東植

崔東植

1908. 3. 10 ~ 1933.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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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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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진남포(鎭南浦)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진남포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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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진남포청년동맹

포상 정보

  • · 애족장(201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0) 1908년 3월 10일 평안남도 진남포부(鎭南浦府) 비석동(碑石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최웅성(崔雄星)이다. 활동 당시에는 진남포부청(鎭南浦府廳)에서 고원(雇員)으로 근무하였다. 1932년 진남포청년동맹(鎭南浦靑年同盟)에 참여하여 격문 배포 활동 등을 전개하였다. 진남포청년동맹은 민족주의적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단체였다. 민족주의적 공산주의는 초기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외세에 맞서서 민족의 안위를 지켜야 한다는 목적으로 제시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진남포청년동맹은 노동자들을 격려하고 전쟁을 반대하기 위하여 격문 배포 계획을 세웠다. 1932년 8월 1일 진남포청년동맹 소속 박기윤(朴基潤)·박남수(朴南洙)·이병호(李炳浩)·김태성(金泰成) 등과 함께 반전기념일을 맞이하여 진남포부청에서 『직장신문(職場新聞)』이라는 이름의 격문을 배포하였다. 『직장신문』에는 항일정신을 고취시킬 내용과 노동자들에 대한 격려를 통한 신사회 건설에 대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이 일로 같은 해 8월 10일 새벽 진남포경찰서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 고등계에서 혹독한 조사를 받고, 8월 20일 평양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같은 해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받고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그러다가 1933년 2월 9일 폐결핵으로 위중한 상태에 빠져 형집행정지를 받고 풀려났지만, 2월 15일 오후 5시 자택에서 끝내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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