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明根
崔明根1920. 7. 12 ~ 1943. 2. 1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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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8) 1920년 7월 12일 경성부 소격동(昭格洞)에서 태어났다. 활동 당시에는 경성부 신설동(新設洞)에 거주하였다.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산본명근(山本明根)으로 고쳤다. 재동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급사·인쇄 직공 등으로 일하였다. 1937년에는 조선총독부 승강기 운전수로 고용되어, 주로 총독 전용 또는 정무총감 전용 승강기를 운전하였다. 그러면서 같이 근무하던 경천중(慶川重) 등과 함께 김동인(金東仁)의 『젊은 그들』·이광수(李光秀)의 『나의 고백』 등의 소설을 탐독하며 민족의식을 키워나갔으며, 일본 제국주의에 불만을 품고 조국의 독립을 간절히 희망하였다. 1939년 4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조선총독부 5층 옥상과 3층의 휴게소 등에서 경천중·최영순(崔榮淳)·최종유(崔鍾有) 등과 만나 “김일성(金日成)이 조선과 만주 국경에서 일본군과 여러 차례 교전하여 격멸하는 개가를 올리고 있다. 그 부대는 조선과 만주의 국경 밀림지대에 있으며 언제든 조선을 침입할 기회를 엿보고 있고, 이 부대가 조국에 침입하여 들어오면 이에 가담하여 독립운동의 일익을 담당해야 한다”라고 역설하였다. 특히 “중일전쟁에서 일본군 사상자가 늘어나고 있어 일본은 패전할 것이 분명하며, 그렇게 되면 조국의 독립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임시정부를 원조해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또한 “일제의 내선일체는 허상일 뿐 한국인에 대한 차별대우는 개선되지 않는다”는 것과 이것을 위해서는 “독립 밖에 방법이 없다”라고 하였다. 나아가 “일제의 한국병탄은 우리 선배의 불충과 불성실 그리고 위정자의 잘못된 정치에서 기인한 것으로 우국지사 등은 여전히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벌이고 있다”라고 하였다. 특히 “중국은 일본의 영토 내에 다수의 스파이를 잠입시켜 활약하고 있고 일본은 결국 스파이 전술과 장기전의 계략에 의해 패배할 것이며 일본이 패전하면 만주·대만은 다른 나라의 영토가 되고 조선은 독립이 분명해 질 것이기 때문에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 어떤 방법이든지 원조해야 한다”라고 역설하였다. 동지들과 대면하여 이러한 이야기를 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충청북도 청주(淸州)로 이주해 간 경천중에게 편지를 써서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하며 독립의 가능성에 대해서 강조하였다. 1940년 5월 최영순이 몰래 빼돌린 「지나사변 정보의 정무총감에게 보내는 비문서」를 보고 은닉한 사실 등이 발각되어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41년 10월 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미결구류일수 중 30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다가 1942년 6월 6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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