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인명사전 -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1851. 10. 23 ~ 1939. 10. 21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부민단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51년 10월 23일 경상북도 선산군(善山郡) 구미면(龜尾面) 임은리(林隱里, 현 경북 구미시 임오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청추헌(聽秋軒) 허조(許祚)이고, 어머니 진성 이씨(眞城 李氏)이다. 호는 성산(性山)이고, 이명은 허노(許魯)·허혁(許爀·許赫)·허환(許煥)이며, 한자를 달리한 허겸(許蒹)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독립운동가 방산(舫山) 허훈(許薰)의 동생이고, 1908년 13도의병연합부대의 군사장(軍師長)으로 활약한 허위(許蔿)의 종형(從兄)이다. 1904년 12월 삼남지방에서 운동비 수만 원을 획급(劃給)한 뒤 각처에서 사람을 모아 일진회를 타파하고자 계획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될 때 이를 방해할 것을 두려워한 일본 측의 조치로 송수만(宋秀萬) 등 10여 명과 함께 붙잡혀 수감되었다. 조약 체결이후 풀려났지만, 윤병국(尹秉國)·윤두병(尹斗炳)·정명섭(丁明變)·이설(李偰)·김복한(金福漢) 등과 함께 을사늑약 반대 상소를 올리고 격문을 배포하던 중 다시 붙잡혀 옥고를 겪었다. 이후 400여 명을 모아 의병부대를 조직하고 경기도 연천(漣川)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또한 1907년에는 허위와 함께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912년 만주로 망명한 후 김동삼(金東三)·유인식(柳寅植) 등과 함께 중어학원(中語學院)을 설립하고, 한국인의 이익사업과 중국인과의 친선을 도모하였다. 같은 해 경학사(耕學社)의 후신인 부민단(扶民團)의 초대 단장을 역임하였다. 부민단은 중국 지린성(吉林省) 퉁화현(通化縣) 합니하(哈呢河)에 본부를 두고 한인자치와 한인사회의 분쟁은 물론 중국인과의 분쟁을 조정하는 한편, 신흥학교(신흥강습소) 등의 한인학교를 설립하여 민족교육을 실시한 단체였다. 부민단은 1919년 만세운동 이후 자신계(自新契)·교육회 등 다른 한인단체와 통합하여 한족회(韓族會)로 확대 개편되었다. 1919년 3월에는 만주에서 발표된 「대한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다. 조소앙(趙素昻)이 초안을 작성하였으며, 한일병탄의 무효 등을 주장하고 있는 이 선언서는 만주를 근거로 한 무장투쟁을 독립운동의 방향으로 설정하였다. 1919년 12월 30일 서간도사회의원(西間島社會議員)의 자격으로 신흥학교 필업식(畢業式)에 참석해 내빈측 대표로 연설하였다. 1922년 동지 30여 명과 함께 국내로 들어와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다가 동대문경찰서에 붙잡혔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곽금선⋮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