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崔相五

崔相五

1866 ~ 1907. 7. 13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崔相五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전북 진산(珍山)의열투쟁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진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자신회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관련 사건

  • · 을사오적 처단 의거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전라북도 진산군(珍山郡, 현 충남 금산군 진산면)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07년 당시 나이가 41세이므로 1866년생으로 추정된다. 1907년 2월 3일 나인영(羅寅永)·오기호(吳基鎬) 등은 을사오적(乙巳五賊) 처단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비밀결사 자신회(自新會)를 조직하고 동지들을 규합하였다. 주상(酒商)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중 이에 참여하였다. 이후 자신회는 모금된 자금으로 김동필로 하여금 인천(仁川)에서 권총 50정을 구입하도록 하고, 거사일을 1907년 2월 13일(음 1월 1일)로 정하였다. 이날 신하들이 임금에게 예를 올리기 위해 입궐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본군의 경계 강화로 지방에서 모집한 결사대원들이 서울로 집결하지 못하게 되자 거사일을 3월 25일로 연기하였다. 거사를 실행하기 위해 4인을 1조로 하는 결사대 6개를 조직하고 30명을 선발할 때 결사대원으로 뽑혔다. 거사일에 박응칠(朴應七)·황경오(黃景五) 등과 자신회취지서·애국가·동맹서·참간장(斬奸狀) 등과 무기를 휴대하고 지정된 장소에서 대기하였으나, 실행하지 못하였다. 나인영 등이 재차 거사를 준비하였지만, 서창보(徐彰輔)가 붙잡히면서 대부분 검거되었다. 이때 피신하여 박응칠·황경오 등 20여 명과 금산군(錦山郡) 보광리(寶光里)와 두두리(斗頭里) 등지로 옮겨가며 조총과 거사 자금을 마련하는 등 항일활동을 지속하던 중 붙잡혔다. 1907년 7월 3일 평리원에서 교수형을 받고 같은 해 7월 13일 형 집행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동언⋮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