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鎭璞
黃鎭璞1888. 4. 17 ~ 1942. 5. 2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대구(조선은행지점)폭탄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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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8년 4월 17일 경상북도 선산군(善山郡) 산동면(山東面) 성수동(星水洞)에서 황봉수(黃鳳秀)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평해(平海)이고, 호는 월정(月庭)이며, 이명은 황국서(黃國瑞)이다. 1910년 일제가 국권을 강탈하자 공부를 그만두고 약장수로 위장하여 각지를 돌아다니며 동지를 물색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이 발발하자 서울에서 만세시위에 참가하고 귀향하였다. 그 후 인근 칠곡군(漆谷郡) 인동면(仁同面)의 후배들인 장진홍(張鎭弘)·장용희(張龍熙), 산동면 적림동의 박관영(朴觀永) 등과 항일운동의 진로와 방법을 모색하였다. 1927년 장진홍이 동향 선배 이내성(李乃成)의 권유와 주선에 힘입어 대구부내(大邱府內) 일제기관 4곳에 대한 투탄 거사를 준비할 때 동참하였다. 장진홍이 직접 폭탄을 제조하고 폭탄을 넣을 위장선물용 나무상자 4개를 구해오자, 겉면에 붙일 쪽지 위쪽에 각각 ‘경북 스토(須藤) 지사(知事) 전(殿)’, ‘경북경찰부장 전’ ‘조선은행 대구지점장 전’ ‘경북경찰부장 전’이라고 쓰고, 아래쪽에는 “벌꿀 500근(斤)이 들어있으며 값은 3원 50전임. 대구 남산정 39번지 길전상회(吉田商會)에서 보냄”이라고 한문과 일본어로 써주었다. 장진홍이 폭탄상자를 가지고 대구에 가서 10월 18일 오전에 전정(前町)의 덕흥여관(德興旅館) 종업원 박노선(朴魯宣)을 통해 수신처로 배달토록 하였다. 첫 배달처인 조선은행(朝鮮銀行) 대구지점에서 폭탄상자임이 발각되어 1개는 급히 도화선이 절단되어버려 불발이었으나, 나머지 폭탄 3개가 연속 폭발하여 일제 당국을 경악케 하였다. 거사 당일 오후 선산군 해평면(海平面) 괴곡동(槐谷洞) 김용암(金容岩)의 음식점에서 박관영과 장진홍을 만나 거사 전말을 전해 들었다. 수사망이 좁혀오자 1928년 2월 장진홍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다. 효고현(兵庫縣) 부고군(武庫郡) 양원촌(良元村)에서 조선인 노동자용 숙소를 차려놓고 운영하면서 노동자들의 권익옹호 활동도 벌였다. 1929년 2월 경북경찰부원들의 출장 탐문수사로 붙잡혀 대구형무소에 구금되었다. 3월 23일 검사국으로 송치되었고, 12월 9일 예심 종결로 공판에 회부되었다. 1930년 2월 17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폭발물취체벌칙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후 재차 일본으로 건너가서 1933년 3월 오사카(大阪)에서 400명 이상의 회원으로 설립된 스이타내선우애회(吹田內鮮友愛會)의 중심인물로 활동도 하다가 1942년 5월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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