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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秉武

崔秉武

1918. 4. 19 ~ 1942.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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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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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대동(大同)일본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대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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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일맥회
  • · 열혈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18년 4월 19일 평안남도 대동군(大同郡) 금제면(金祭面) 외제리(外祭里)에서 태어났다. 중류층 농가에서 자랐다. 1936년 항일비밀결사 일맥회(一麥會)와 1937년 열혈회(熱血會)에 참여하여 농민대중과 조선 민족의 갱생을 위한 농업 부문 연구를 진행하였다. 금제면 원장공립보통학교(院場公立普通學校)를 졸업한 후, 원장금융조합 서기 견습생으로 근무하였다. 1936년 평양(平壤)의 기독교계 사립학교인 숭인상업학교(崇仁商業學校)에 재학중 교사와 목사에게 ‘조선은 병합 이후 나라는 망했지만 수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어 멸망하지 않는다’고 교육 받으며, 조선인들이 일본인에 비해 차별적인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하여 조선의 독립을 염원하게 되었다. 같은 해 6월 13일 동창생 박윤옥(朴潤玉) 등 6명과 함께 각자 농업·상업·공업·교육 등 각 부문을 연구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특히 농민대중의 민족의식을 계몽시켜 조선 독립을 쟁취해 공화정체(共和政體)를 수립하기로 결의하며 항일비밀결사인 일맥회를 조직하였다. 이후 경제적 문제 등으로 조직 활동이 원활하지 않자 1937년 2월 중순 평양부 상수구리(上水口里)에 위치한 동지 지광호(池光浩)의 집에서 모여 회원 각자가 열혈과 같은 공고한 의식으로 활동하자며 다시 열혈회를 결성하였다. 그리고 ‘조선 민족의 영원한 복지를 위해 조선 독립을 기한다’·‘농민대중을 위해 민족독립의 기술 양성에 노력하는 동시에 농업의 기술과 경영에 관한 기술을 지도하는 등 경제 갱생을 도모하도록 한다’는 취지를 내세웠다. 같은 해 10월 17일 평양 목단대(牧丹台)에서 열혈회에 가입하고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1938년 1월 31일과 2월 초순 여러 차례의 회의를 거쳐 박윤옥이 종교부문·김현주(金顯周)가 문학부문 등을 담당하기로 하자, 농업 중 과수 연구 분야를 맡기로 하였다. 그리고 1년간 취직한 이후 농업 방면의 상급학교에 입학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1939년 4월 일본 도쿄(東京)의 니혼대학(日本大學) 전문부 척식과 농업전공과에 입학하여, 이후 농민도장(農民道場)을 개설하고 민족의식의 앙양과 실력향상으로서 독립을 쟁취할 것을 도모하였다. 이어서 같은 해 10월 중순까지 조선과 일본에서 회합하면서 각자의 항일의지를 공고히 하여 각각 분담 분야의 실천과 계획을 꾸준히 전개해 나갔다. 하지만 열혈회 단체의 자금조달 방법으로 회비 적립을 추진하던 과정에서 지광호 등이 불온가사(不穩歌詞) 소지 혐의로 종로경찰서(鐘路警察署)에서 조사를 받다가 단체의 정체가 드러나게 되었다. 이 일로 그해 11월 28일 도쿄에서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 고문과 심문을 받았다. 1941년 11월 27일 도쿄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과 집행유예 4년을 받고 풀려났다. 그러나 심문을 받다가 얻은 고문의 여독으로 인해 병이 심각해져, 결국 1942년 7월 7일 24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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