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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歲均

崔歲均

1925. 8. 24 ~ 1943.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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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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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淸州)일본방면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청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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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6)

관련 사건

  • · 항일투쟁(비밀결사 조직)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6) 1925년 8월 24일 충청북도 청주군(淸州郡) 북이면(北二面) 한암리(寒巖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최세표(崔歲杓)·최세구(崔歲枸)이다.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중 임병철(林炳喆)을 비롯한 동지들과 함께 조선의 독립을 목표로 하는 항일비밀결사를 만들어 실력양성과 조직의 확대, 단결력 강화, 동지 획득, 민족의식 고양 등을 목표로 활동하였다. 1931년 만주사변과 1937년 중일전쟁을 거치면서 일본 제국주의는 전시 파시즘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특히 중일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점차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조선총독부에서도 경제적·군사적 열세를 극복하고자 총동원정책을 통해 물자의 총동원과 총후 식민지 조선 사회를 재조직하고자 했으며 정신적으로 내선일체(內鮮一體)를 강조하면서 사상동원에 힘을 쏟았다. 그렇지만 전쟁이 장기화되고 경제가 파탄이 나자, 평소의 민족적 차별을 견디고 있었던 한인들의 불만이 보다 심해졌고 일본의 패전과 한국의 독립을 상정한 비밀결사 및 항일 단체들이 은밀하게 활동을 진행하고 있었다. 1940년 5월경 일본 도쿄시(東京市) 이타바시구(板橋区)에 거주하면서 도쿄부립고등학교(東京府立高等學校) 재학 중에 가깝게 지내던 와세다고등공과학교(早稻田高等工科學校) 학생 임병철을 중심으로 하여 일본인으로부터 모멸감을 받고 민족적 차별 대우를 받는 일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오태호(吳泰鎬), 양응석(梁應錫) 등과 함께 본인의 하숙집에서 여러 번 회합하였다. 하숙집에서 임병철이 ‘우리는 도쿄부립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쓰비시중공업(三菱重工業)같은 큰 회사에 취직하려 하였으나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채용되지 못하였고 이는 일본 정부가 내세우는 내선일체가 사실은 우리 민족에 대하여 차별 대우이므로 이러한 모멸적, 차별적 압박적인 질곡으로부터 벗어나려면 조선 민족의 독립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하자 함께 동조하였다. 그리하여 1940년 10월경 표면적으로는 학술 연구를 표방하였으나 민족주의적 성격의 집단을 결성하기로 하여 독립운동을 위한 항일 비밀결사를 설립하고 이후 한인 조직의 확대강화, 단결력 강화, 동지 획득, 민족의식 고양, 선동 등을 목표로 활동하였다. 차별대우를 받는 한국 민족이 해방되려면 먼저 단결을 강화하고 스스로 좋은 지도자가 되기 위한 자기 연마를 위해 노력하는 실력양성론적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이 결국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1941년 10월 12일 붙잡혀 갖은 고문과 심문 끝에 1942년 4월 4일 국내로 송환되었으나, 일제 경찰의 극심한 고문으로 인해 1943년 2월 25일 1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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