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昌模
崔昌模1923. 9. 1 ~ 2011. 11. 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3)
관련 사건
- · 민족의식 고취(독립만세운동 소식 전달)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1993) 1923년 9월 1일 전라남도 광주(光州)에서 태어났다. 일본으로 도항하여 유학생 생활을 하던 중 일본인의 조선인에 대한 민족적 차별을 느끼고 학교 급우들에게 이를 성토하고 조선인들의 민족의식과 항일 독립의식을 고취하고자 하였다. 1931년 만주사변과 1937년 중일전쟁을 거치면서 일본 제국주의는 전시 파시즘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중일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점차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일제는 총동원정책을 통해 물자의 총동원과 사상동원에 힘을 쏟았다. 그렇지만 전쟁이 장기화되고 경제가 파탄이 나자, 일본의 패전과 한국의 독립을 상정한 비밀결사 및 항일 단체들이 은밀하게 활동을 진행하고 있었다. 여기에 1941년 태평양 전쟁까지 일어나면서 조선인들의 호기를 맞아 미국과 영국 등 연합국의 지원을 받고 독립을 성취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1932년 경 일본으로 도항하였고, 1943년 4월 오사카부(大阪府)의 오사카공학교에서 유학생 생활을 하였다. 이후 육군병기학교 채용시험에 응시하였으나 불합격되었다. 이를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일본인에 의한 조선인 민족 차별로 인한 것으로 생각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였고, 이후 동창생들에게 관부연락선(關釜聯絡船) 격침사건에서 조선인의 역할을 부각시켜 찬양하였다. 또한 학교 급우들에게 교토(京都) 시내에서 조선인 학생들의 광범위한 독립만세 시위가 전개되고 있다는 등의 주장을 퍼뜨려 조선인 학생들의 항일 독립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하였다. 이러한 활발한 활동을 펼치던 와중에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44년 6월 30일 오사카구재판소에서 이른바 임시취체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한반도로 환국한 것으로 보이고, 6·25전쟁이 발발하자 각종 전투에 참가하여 1950년 12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화랑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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