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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永洙

韓永洙

1891. 1. 16 ~ 1939.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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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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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진위(振威)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진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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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6)

관련 사건

  • · 진위군 병남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6) 1891년 1월 16일 경기도 진위군(振威郡) 오성면(梧城面) 양교리(梁橋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한자를 달리한 한영수(韓泳洙)를 썼다.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11일 진위군 병남면(丙南面)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에 찬성하여 고향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키고자 하였다. 이에 뜻을 함께하기로 한 이도상(李道相)·목중상(睦俊相)·심헌섭(沈憲燮) 등과 함께 진위군 평택(平澤) 장시가 열리는 3월 11일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3월 11일 오후 5시 평택 장날에 평택역 앞에서 이도상의 선창으로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이때 이도상 등과 함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치자, 곧이어 평택공립보통학교 학생들 40여 명이 합류하여 독립만세를 연호하였다. 평택시장에서 학생들의 합류에 자극받은 사람들이 합세하면서 시위대는 300여 명에 이르게 되었다. 학생들과 주민들의 합류로 시위가 크게 확대되자 진위경찰서 일제 경찰은 순사들과 수비대병력을 파견하여 진압을 시도하였다. 평택시장에 도착한 일제 군경은 시위대를 강제로 해산하고 만세시위를 주도한 인사들을 체포하였다. 이때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동료들과 함께 마지막까지 독립만세를 외치며 격렬하게 저항하다가 결국 붙잡히고 말았다. 1919년 4월 1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그해 5월 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자신의 행위는 “조선민족으로서 정의(正義), 인도(人道)에 근거하여 의사를 발동한 것으로 범죄가 아니”라는 취지로 상고하였지만, 같은 해 5월 31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면서 형이 확정되었다.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다가, 1920년 1월 31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노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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