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魯元
黃元1882. 3. 21 ~ 1963. 2. 1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1919년 청양군 정산면
- · 목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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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5) 1882년 3월 21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목면(木面) 안심리(安心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6일 청양군 목면에서 거행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청양군 목면의 만세시위는 전날인 4월 5일 정산면 정산시장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던 권흥규(權興圭)의 사망이 계기가 되었다. 정산면 백곡리(白谷里)의 홍범섭(洪梵燮)·임의재(任毅宰)·윤석희(尹錫禧)·홍세표(洪世杓)·박상종(朴商鍾) 등은 정산면 서정리(西亭里) 정산시장의 장날인 4월 5일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하지만 즉각 출동한 일제 헌병들이 시위대의 해산을 명령하면서 홍범섭 등 주요 인물들을 체포하여 정산헌병주재소로 연행하였다. 이 모습을 보고 분노한 시위대가 주재소로 달려가 연행자 석방을 요구하며 격렬하게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시위대의 선두에서 강력하게 만세시위를 이끌던 정산향교(定山鄕校) 직원(直員) 권흥규(權興圭)가 일제 헌병의 총격에 맞아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4월 6일 아침 권흥규의 친인척을 포함해 전날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던 사람들과 함께 주재소로 가서 시신을 인수한 후, 고인의 자택으로 가는 운구행렬에 참여하였다. ‘배일사권공지구(排日士權公之柩)’라고 쓴 명정(銘旌)을 앞세운 운구가 지나가는 길목마다 주민들이 나와 노제를 지내며 운구행렬에 동참하였다. 시간이 갈수록 운구행렬의 규모는 더욱 확대되었고, 목면 지곡리(池谷里)를 지날 즈음부터 독립만세의 외침이 들려오면서 태극기가 배포되었다. 이에 주변의 사람들과 더불어 적극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연창하면서 목면으로 행진하였다. 운구행렬이 만세시위 시위대로 전환되자 일제는 다급하게 공주(公州)의 헌병대를 안심리 쪽으로 급파하였다. 공주에서 파견된 헌병들이 안심리로 가는 길목의 언덕에서 운구행렬을 발견하자마자 즉각적으로 발포하였다. 이로 인해 권흥규의 조카딸과 명정을 쓴 권영진(權寧鎭) 등이 사망하였고 다수의 부상자도 발생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청양헌병분견소에서 조사를 받고, 1919년 4월 26일 즉결심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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