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岐壽
趙岐壽1902. 8. 3 ~ 1951. 10. 1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전북청년연맹
- · 고려공산청년회
- · 금산청년동맹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6)
관련 사건
- · 제3차 조선공산당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6) 1902년 8월 3일 전라북도 금산군(錦山郡, 현 충청남도 금산군) 복수면(福壽面) 곡남리(谷南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이명은 김덕삼(金德三)이다. 1924년 3월 서산공립보통학교(현 서산초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금산 지역에서 사회주의계열의 사회운동과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 활동을 전개하였다. 식민지의 현실을 인식하고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한 사회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고민하던 중 이를 실행하고자 비밀결사인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금산청년동맹(錦山靑年同盟)에 가입하였다. 이와 함께 『사회주의대의』·『프롤레타리아사회학』·『무산청년독본』 등의 사회과학서적을 학습하면서 사회운동과 함께 민족해방운동을 시작하였다. 1925년 10월 전북청년연맹(全北靑年聯盟) 창립대회에 참가하였으며, 연맹 창립 후 조직부를 담당하였다. 1926년 12월 이평권(李平權)의 권유로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하였다. 1927년 봄부터 조선공산당 전북 여산(礪山) 지역 조직원으로 활동하였다. 1928년 4월 15일 금산청년동맹회관에서 개최된 금산청년동맹 제1회 정기대회에서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전개하던 중 1928년 8월 24일 이른바 제3차 조선공산당 사건 관련자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30년 12월 2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미결구류일수 중 50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던 중 1931년 8월 10일 만기를 채우고 풀려났다. 이후 1934년 5월 6일 공안을 방해하였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 검속되었다가 5월 8일 풀려났다. 광복 이후 1945년 12월 전국인민위원회(全國人民委員會) 대표자대회에 참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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