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南憲
趙南憲1923. 2. 10 ~ 1996. 8. 2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3)
관련 사건
- · 내선일체 반대 독립운동(전주부) 계획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3) 1923년 2월 10일 전라북도 익산군(益山郡) 이리읍(裡里邑) 남중리(南中里)에서 태어났다. 활동 당시에는 서울 종로(鐘路) 안국정(安國町)에 거주하였다. 일제의 강요로 화전유항(和田有恒)라는 창씨명을 썼다. 이리공립보통학교와 전주공립공업전수학교 가구과를 졸업하였다. 1942년 당시 서울 다옥정(茶屋町, 현 중구 다동) 소재 제국축음기주식회사 경성영업소 기장계(記帳系)에서 근무하였다. 1937년 전주공립공업전수학교에 입학한 후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의 저서를 탐독하고 송정섭(宋正燮)과 교류하면서 민족의식에 눈뜨게 되었다. 1940년부터 1942년까지 송정섭·조세경(趙世庚)·김병화(金炳化) 등과 함께 “내선일체(內鮮一體)는 실현 불가능하다. 조선 민족이 행복해지는 길은 독립뿐이다”라며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실력 양성 방안을 논의하는 등 독립운동 계획을 세웠다. 1940년 1월 말경 하숙집인 전북 전주군(全州郡) 서정(曙町, 현 전주시 완산구 서서학동) 이상훈(李商薰)의 집에서 송정섭·조세경과 함께 “조선에서 쫓겨난 다수의 동포가 만주에서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 조국이 없는 국민만큼 슬픈 자는 없다. 만주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한인은 조선의 독립을 희망하며 그 기회를 노리고 있다. 어떠한 고난이라도 무릅쓰며 우리 청년의 손으로 조선을 되찾아야 한다”라는 대화를 나누었다. 같은 해 3월 상순 송정섭·조세경·김병화와 하숙집에 모여 독립운동 방안을 논의하였다. 이때 전주공립공업전수학교 교사 니시무라(西村)가 한국인 학생을 모멸하는 말을 쓴다고 전하며 “니시무라 뿐 아니라 일본인은 모두 한인을 우월한 입장에서 대한다. 이는 조국이 없는 까닭이니 우리가 조선 독립을 위해 매진해야 한다”라고 말하였다. 또한 송정섭 등과 더불어 “조선 독립 가능성을 굳게 믿는다. 국내·외에는 독립 기회를 노리는 민족주의자들이 많고 상하이(上海)에 임시정부도 있다. 기회가 오면 안팎에서 서로 호응하며 봉기할 것이다. 우리는 그 기회가 올 때까지 실력을 양성해야 한다”라고 결의하였다. 서울로 주거지를 옮긴 후에도 김정섭과 교류하며 독립에 대한 논의를 지속하였다. 1942년 5월 상순 무렵 덕수궁에서 송정섭을 만나 “조선 청년은 이곳을 무의식적으로 구경해서는 안 된다. 조선은 예전에 훌륭한 문화를 지닌 독립국이었다. 조선 청년은 반드시 조선을 우리 손으로 되찾을 각오를 해야 한다”라는 대화를 나누고 함께 독립을 이루자고 약속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활동이 일제 경찰에 노출되어 붙잡혔다. 1944년 6월 12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윤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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