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順會
韓順會1885. 12. 14 ~ 1961. 1. 2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신간회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3)
관련 사건
- · 황해도 천도교 구파 독립운동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3) 1885년 12월 14일 경기도 광주군(廣州郡) 돌마면(突馬面) 율리(栗里)에서 태어났다. 1927년부터 신간회(新幹會) 광주지회장과 광주군 천도교구장을 역임하며 독립운동자금 모집과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경기도 광주군 천도교구장으로서 지역의 종교활동과 사회운동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였다. 1927년 8월 신간회 광주지회가 설립될 때에는 지회장으로 선출되어 광주지회를 이끌었다. 이후 천도교 중앙간부인 봉도(奉導)를 역임하였다. 1936년 천도교는 종교의 힘을 빌려 일제를 몰아내기 위한 멸왜(滅倭)기도 시행을 극비리에 전개하였다. 대도주 박인호(朴寅浩)를 중심으로 한 천도교 구파계는 황해도·경기도·충청도·전라도 등에서 멸왜기도를 실시하였다. 같은 해 8월 14일 박인호는 천도교 2대 교주 최시형(崔時亨)의 승통(承統) 기념일인 지일기념일(地日紀念日)에 교인들로 하여금 아침·저녁 식사 때마다 일제의 멸망을 기원하는 특별기도를 실시하도록 밀명을 내렸다. 천도교 중앙간부로서 최준모(崔俊模)·김재계(金在桂)·김경함(金庚咸) 등 다른 간부들과 협의하여 대도주의 밀명에 따라 일제의 멸망과 조국독립을 기원하는 특별기도문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천도교들에게 비밀리에 배부하고, 매일 식사 후에 기도문을 읽도록 하였다. 이를 통해 많은 천도교도들에게 독립사상을 고취하면서 교도 상호간의 정신적 결합을 이끌어 냈다. 1937년 중일전쟁(中日戰爭)이 발발하자 이를 천도교의 염원인 국권회복의 기회라 여기고, 7월 10일 최준모·김경함 등과 함께 독립운동 전개를 위한 계획을 협의하였다. 이 회합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우선 활동자금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은 후, 천도교의 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을 사금(賜金)이라고 칭하며 전국을 4개 구역으로 나눠서 간부들이 각기 담당지역을 정해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도록 하였다. 그 결과 324원에 달하는 금액을 모집할 수 있었다. 그해 12월에는 천도교의 멸왜기도 등이 일제 치안당국에 발각될 경우 천도교 구파 계열 전체가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새로운 독립운동 방략을 수립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같은 달 20일 김재규·최준모 등과 함께 1938년도 특별기도 실시에 대해 협의하였다. 우선 종전대로 멸왜기도를 한다면 치안당국에 탄압을 받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이를 고려하여 동양평화의 기초가 하루 빨리 확립되기를 기원한다는 문구를 표면에 넣어 특별기도의 원래 목적을 위장하기로 하였다. 이처럼 항일기도문 작성과 배포, 항일기도문 낭독, 독립운동자금 모집 등 천도교 구파 계열의 독립운동을 비밀리에 지속적으로 전개하였다. 그러다가 최택선(崔澤善)이 황해도 신천경찰서(信川警察署) 고등계(高等係)에 이러한 천도교의 독립운동 활동에 대한 내용을 밀고하였다. 이 일로 1938년 2월 17일부터 일제 경찰의 대대적인 검거작전이 시작되면서 황해도 일대에서 다수의 천도교도가 체포되었고, 경기도·충청도·전라도에서도 수백 명의 천도교도가 검속되었다. 그해 3월 4일 중앙간부들에 대한 검거가 실시될 때 최준모·김재계·김경함 등과 함께 붙잡혀 사리원경찰서로 압송되었다. 하지만 사건을 확대할 경우 중일전쟁의 원활한 수행에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일제 경찰이 천도교 중앙간부들을 기소유예로 석방하면서 약 70일 만에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노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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