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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哲鳳

韓哲鳳

1898. 10. 25 ~ 193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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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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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신흥(新興)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신흥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조선노동총동맹
  • · 함흥노동연맹

포상 정보

  • · 애족장(2014)

관련 사건

  • · 장풍탄광습격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4) 1898년 10월 25일 함경남도 신흥군(新興郡) 가평면(加平面) 풍서리(豐西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한석봉(韓晳鳳)이다. 1930년 6월 조선탄업주식회사(朝鮮炭業株式會社)가 경영하는 신흥군 장풍탄광(長豐炭鑛)에서 회사 측의 부당한 처우에 반대하여 항일 동맹파업과 장풍탄광습격사건을 주도하였다. 장풍탄광은 신흥군 가평면 장풍리(長豐里)에 위치한 광산으로 일본인 소유의 조선탄업주식회사가 경영하고 있었다. 1930년 5월 2일 장풍탄광 노동자 100여 명은 회사의 공휴일을 이용하여 연례행사인 동생계(同生契) 모임을 부근의 산에서 개최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1929년 원산총파업 등으로 인해 한국인 노동자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조선탄업주식회사는 이 모임을 노동조합(勞動組合)을 결성하기 위한 모임이라고 자의적으로 판단하였다. 회사 측에서 이러한 억측에 기반하여 동생계 모임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취업시키지 않겠다고 폭언을 하며, 노동자들을 구타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5월 3일 이에 격분한 200여 명의 장풍탄광 노동자들은 무리한 구타 반대, 불경언사(不敬言辭)의 철폐, 임금 인상, 노동시간 축소, 갱내 위험노동 반대, 위생기관 설치, 해고수당과 사망위로금 지급, 노동조합조직운동 간섭 반대, 해고 반대, 악질 경무계원(警務係員)의 축출 등의 내용을 담은 12개조의 요구사항을 내걸며 파업에 돌입하였다. 이때 장풍탄광의 노동자로서 적극 파업에 참여하였다. 5월 4일에는 탄광 노동자들 이외의 공장 인부, 검탄(檢炭) 인부, 목공 인부들까지 전부 동참하면서 파업은 더욱 확대되었다. 그러자 노동자들은 파업단(罷業團) 본부를 회사 사무실 건너편에 설치하고,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고자 하였다. 조선탄업주식회사는 이에 대한 대응으로 사옥(社屋)에 거주하는 한국인 노동자들을 내쫓고, 일제 경찰을 동원하여 강력하게 노동탄압을 자행하였다. 한국인 탄광노동자들과 조선탄업주식회사의 갈등이 격화되자, 조선노동총동맹(朝鮮勞動總同盟)과 함흥노동연맹(咸興勞動聯盟)에서는 간부를 파견하여 쟁의를 조정하고자 하였다. 5월 12일 조정 결과 노동자 측과 사측이 합의하면서 장풍탄광의 파업은 중단되었다. 하지만 6월 20일 회사 측이 조정 합의를 어기고 파업을 주도한 노동자를 해고하였다. 이때 파업단장 이인섭(李仁燮)을 비롯하여 14명의 동지들과 함께 해고되었다. 같은 해 6월 21일 해고자들을 비롯한 200여 명의 한국인 탄광노동자들과 함께 산 속에서 대책회의를 개최하였다. 회의 결과 습격대(襲擊隊)를 10개 부대로 편성하여, 다음날 일제히 장풍탄광을 습격하기로 결의하였다. 6월 22일 새벽 2시 습격대와 함께 탄광사무소와 전기 발전소를 기습적으로 파괴하고, 탄광 안으로 들어가 전선을 모두 절단한 후 인양기(引揚機)를 비롯한 작업 관련 기구들을 모조리 파괴하였다. 또한 회사 간부와 앞잡이 노릇을 하는 광부의 집도 습격하였다. 이때 습격대 1개 부대의 지휘를 맡아 노동자들을 이끌고 권양기계실(捲楊機械室)을 파괴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한국인 노동자들의 습격에 놀란 회사 측은 일제 경찰에 진압을 요청하였다. 이에 신흥경찰서·함흥경찰서·함경남도 경찰부 등에서 50~60여 명의 무장 경찰이 동원되어 한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을 시작하였다. 결국 100여 명에 달하는 한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이 일로 1931년 7월 31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 건조물훼기죄, 기물훼기죄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노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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