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贊甫
洪贊甫미상 ~ 1924. 5. 29
관련 단체
- · 독립청년단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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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5)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와 출생일자는 알 수 없다. 1923년 독립청년단에 참여하여 만주에서 활동하던 독립군이 국내진입작전을 전개할 때 평북 희천군(熙川郡)에서 이를 지원하였다. 1923년 천마군(天摩軍) 사령관 최시흥(崔時興)의 부하 최오산(崔午山)의 권유로 조준용(趙俊龍)·이관도(李官道)·이찬지(李燦芝)·김중보(金仲甫)·윤효정(尹孝正)·이자진(李子珍)·최원순(崔元淳)·손창룡(孫昌龍)·송영진(宋英珍)·송영수(宋英秀)·최운기(崔雲基) 등과 함께 독립청년단(獨立靑年團)을 조직하고, 최오산 일파에게 길을 인도하여 주고 일제 경찰의 동정을 정찰하여 알려주었다. 같은 해 9월 21일 밤에는 최오산 부대와 협력하여 희천군 북면(北面) 명문동(明文洞) 창참주재소(倉站駐在)와 면사무소, 민가 20여 호를 습격하여 방화한 후 일제 경찰을 처단하였다. 이 일로 동지 25명과 함께 희천경찰서에 붙잡혀 19일간 취조를 당하는 과정에서 가혹한 고문을 받은 후 재판에 회부되었다. 1924년 2월 18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고, 같은 해 5월 1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일제 경찰의 고문에 대해 증언하였다. 진상 조사 결과 동지들의 몸에서 고문으로 인한 화상(火傷)·긴박상(緊縛傷)·좌상(挫傷)·타박상(打撲傷) 등이 확인되었고, 몸에 남겨진 4군데의 타박상도 드러나게 되었다. 조선변호사협회에서는 고문의 심각성에 대해 알리기 위해 평양을 중심으로 변호사 임시대회와 강연회를 개최하는 동시에 책임자에게 면직을 권고하고 직접 고문을 한 자에 대해서는 형법상 수속을 밟아 고발하는 등 조치를 취하였다.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다가 고문 후유증으로 발생한 폐렴으로 생명이 위독해졌다. 변호사 김형숙(金亨淑)의 담보로 평양 자혜의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으나, 그해 5월 29일 끝내 사망하였다. 같은 날 평양 애미산(愛美山) 공동묘지에 매장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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