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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昌欽

洪昌欽

1894. 1. 22 ~ 1960.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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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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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군위(軍威)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군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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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흠치교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8) 1894년 1월 22일 경상북도 군위군(軍威郡) 부계면(缶溪面) 대율리(大栗里)에서 아버지 홍승우(洪承佑)와 어머니 문화 류씨(文化 柳氏)의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부계(缶溪)이며, 자는 백문(伯文)이다. 1920년 흠치교(吽哆敎)에 가입하고 활동하였다. 흠치교는 1924년을 기해 차경석(車京錫)이 계룡산(鷄龍山)에 도읍을 정하고 제위에 오르면 일제 통치에서 벗어나 한국이 독립할 것이라고 예언하며 교인을 모았다. 특히 교주 아래에 60인의 고문을 두고, 다시 그 밑으로 6인조-12인조-8인조-15인조 등으로 조직을 갖추었다. 그리고 각 조직마다 교도 1인당 30원-15원-10원-5원 등을 내도록 하였고, 모집된 금액 가운데 제사비용 등을 제외한 나머지는 본부로 보내져 독립운동자금으로 사용되었다. 1920년 (음)7월 홍재훈(洪在燻)의 입교 권유를 받고 군위군 부계면 동산리(東山里) 홍정수(洪定修)의 집에서 홍영우(洪泳佑) 등과 함께 흠치교에 입교한 후 8인조로 가입하였다. 그리고 독립운동자금의 일환으로 치성비 50원을 납부하였다. 같은 해 (음)9월에는 부계면 대율리에 거주하는 천주식(千周植)에게 흠치교에 입교할 것을 권유하여 15인조에 가입시키고, 치성비 50전을 징수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하던 중 일제 경찰에 붙잡혔고, 1921년 6월 4일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이송되었다. 같은 해 7월 8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해 11월 2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미결구류일수 중 120일 본형 산입)되고 형이 확정되었다.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다가, 1922년 5월 14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박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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