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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天植

洪天植

1884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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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洪天植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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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5) 판결문에 따르면 1921년 당시 38세이므로 1884년생으로 추정된다. 본적은 경성부 가회동(嘉會洞)이고, 활동 당시에는 경기도 고양군(高陽郡) 숭인면(崇仁面) 청량리(淸涼里, 현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청량리동)에 거주하였다. 이명은 홍두식(洪斗植)이다. 1921년 김진억(金鎭億) 등과 함께 독립운동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이후 지속적으로 독립을 희망하였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연락원으로 활동하던 임경호(林敬鎬)·김충규(金忠圭) 등과 교섭하였다. 1921년 4월 청량리 자택에서 김충규로부터 김진억을 소개받았다. 김진억은 1920년부터 임시정부의 독립자금을 조달할 목적으로 전북 부안(扶安)과 서울 등지에서 동지를 규합하고 활동하면서 이완식(李完植) 등과 함께 부안군 부령면(扶寧面) 선은리(仙隱里)의 이승호(李承鎬) 등으로부터 독립자금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5월 하순 자택 뒷산에서 김진억에게 임시정부 연락원 임경호·최석천(崔錫天)을 소개하고 함께 독립운동에 관해 계획하였다. 이 자리에서 먼저 독립자금을 모집하여 서점을 경영하면서 이를 거점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자는 계획을 이야기하며, 김진억에게 독립자금을 모집하라고 권유하였다. 이 같은 활동을 이어가다가 1921년 7월 초 서울 홍파동(紅把洞)에서 동지 6명과 함께 붙잡혀 동대문경찰서 고등계에서 조사를 받고, 같은 달 9일 검사국으로 압송되었다. 1921년 10월 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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