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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承武

趙承武

1899 ~ 1920.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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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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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독립군비단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기록에 따르면 1899년생으로 추정된다.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는 알 수 없다. 만주로 이주한 이후 창바이현(長白縣) 일대에 거주하였다.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지린성(吉林省) 남서부에 위치한 창바이현은 압록강 대안이라는 지리적 여건으로 독립운동의 요지였다. 1919년 3월 국내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의 영향으로 만주에도 여러 독립운동단체들이 조직될 때, 창바이현에서는 이은향(李殷鄕)·이태걸(李泰杰)·윤덕보(尹德甫) 등을 중심으로 ‘민주공화국 수립을 최종 목표’로 하는 대한독립군비단이 조직되었다. 설립 당시 단원 300여 명을 보유하고 있었고, 지방에는 지단(支團)을 배치하였다. 당시 학교를 다니면서 창바이현 팔도구(八道溝)에 설치된 지단에 가입하여 경호원(警護員)으로 활동하였다. 경호원으로서 국내를 오가는 한국인에게 「경고대한동포(警吿大韓同胞)」를 배포하였는데, 그 내용은 정의와 인도를 무시하는 일제에 대항하여 만주와 노령 지방의 무력투쟁에 청년들의 참여와 자금 모금에 대한 국내의 협조를 구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한편, 1920년 8월 일제는 「간도지방불령선인초토계획(間島地方不逞鮮人剿討計劃)」을 작성하고 만주의 한인 독립운동 세력을 섬멸하고자 하였다. 당시 창바이현에 대한 토벌에는 일본군을 비롯하여 500여 명의 중국 마적이 동원되었다. 이들을 통해 1921년 3월 초까지 창바이현 일대에서 200여 명의 한인이 살해되었다. 이러한 상황 아래 1920년 11월 29일 팔도구에서 구성문(具成文) 등과 함께 일본군과 교전 끝에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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