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炳基
韓炳基1881 ~ 192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독립단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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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5)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 주내면(舟內面) 홍북동(弘北洞)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81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은 한병규(韓炳奎)이다. 1910년 일제가 한반도를 강점한 직후 노령(露領)으로 건너갔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남만주(南滿洲)로 이동하였다.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대한독립단은 1919년 만세운동 직후 남만주 류허현(柳河縣) 삼원포(三源浦)에서 조직되었다. 을사늑약 이후 의병 활동을 전개했던 조맹선(趙孟善)·최영호(崔永鎬)를 비롯하여 윤덕배(尹德培)·김원섭(金元燮) 등 10여 명을 중심으로 결성되었고, 통화(通化)·싱징(興京)·린쟝(臨江)·지안(輯安)·환런(桓仁)·콴뎬(寬甸) 등 남만주 일대에 조직된 지부에 간부들을 선임하였다. 대한독립단은 독립운동자금과 독립군 대원을 모집하였고, 각 지방에서 자치행정을 실시하였다. 1919년 (음)5월 10일 지안현 패왕조(覇王槽)에서 대한독립단에 참가하여 통신 연락을 담당하며 친일행위자를 처단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에는 지안현 소황구(小黃溝) 사도양차(四道陽岔)에서 대한독립단 통신원 겸 중앙검찰(中央檢察)로 활동하였다. 한편, 1920년 7월 17일 평안북도 모처에서 남만주 통구(通溝) 주재 안동일본영사관(安東日本領事館) 파견 순사, 의주헌병대(義州憲兵隊) 미타감시소(美他監視所) 주임, 문흥경찰서(文興警察署)와 고산진경찰서(高山鎭警察署) 경찰장(警察長)이 모여 지안현에서 활동 중인 독립운동가를 토벌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일제 경찰과 헌병 11명으로 구성된 토벌대를 조직하고 3개 반으로 나누어 7월 19~26일 독립운동가 체포에 나섰다. 1920년 7월 19일 토벌대 제2반은 의주헌병대 미타감시소를 출발하여 남만주로 이동하였다. 토벌대는 지안현 소황구 사도양차 대한독립단 총사무원(總事務員) 김상병(金相炳)의 집에서 한인(韓人) 청년들이 군사 훈련을 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김상병의 집 습격 계획을 세웠다. 이에 같은 달 23일 김상병의 집에서 김상병·한형섭(韓亨燮)과 함께 토벌대에 붙잡혔다. 7월 29일 고산진경찰서에 인계된 후 일제 경찰에 의해 사망하였고 시신은 압록강에 버려졌다. 여러 날이 지난 후에야 시신이 수습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최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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