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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衡均

趙衡均

1873. 6. 15 ~ 1948.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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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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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정주(定州)문화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정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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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조선독립애원서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73년 6월 15일 평안북도 정주군(定州郡) 덕달면(德達面) 덕성동(德星洞)에서 태어났다. 호는 농은(農隱)이다. 1880년부터 고향에서 한문학을 공부하였다. 1907년 이승훈(李昇薰)이 정주에 세운 오산학교(五山學校)에 설립협찬원으로 참여하였으며, 1908년 5월 사립 덕달학교(德達學校)를 설립하였다. 또한 고향에 덕흥교회(德興敎會)를 세웠다. 1919년 ‘조선독립애원서’에 서명하고 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전국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고 독립선언서가 전달될 것이라는 사실을 이승훈과 함께 의주(義州) 만세시위 지도자 유여대(劉如大)에게 알렸다. 2월 28일 서울로 상경하여 암중모색 하던 중, 3월 12일 김백원(金百源)·문일평(文一平)·차상진(車相晋)·문성호(文成鎬) 등과 함께 민족대표 12명의 명의로 “3·1독립선언서는 조선독립은 2천만 동포의 요구로 이를 승계한 우리는 정의와 인도의 원칙으로 그 요구와 주의를 관철하겠다”라는 「애원서」를 작성해 조선총독부 앞으로 보냈으며, 종로(鐘路) 보신각에서 시민들 앞에서 낭독하는 시위에 참여하였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8월(미결구류일수 중 12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1920년 2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었다.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다가, 그해 4월 28일 풀려났다. 이후 오산고등보통학교 운영에 참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은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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