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寶錫
車寶錫1892 ~ 1932. 3. 21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재상해유일학생회
- · 대한인여자애국단
- · 대한여자애국단 샌프란시스코지부
- · 샌프란시스코 국어학교
- · 대한인국민회
포상 정보
- · 애족장(201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6) 평안남도 맹산군(孟山郡) 함종리(咸從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92년생으로 추정된다. 이화학당과 일본 고베(神戶)가사여자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1912~1913년 대구 신명여학교 교사로 활동하였으며, 1915년까지 신명여학교에서 재직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이후 오빠인 차이석(車利錫)과 함께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였다. 1921년 재상해유일유학생회(在上海留日留學生會)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흥사단(興士團)에도 관여하였다. 1922년경 미국으로 건너가 대한인여자애국단(大韓人女子愛國團) 상항(桑港, San Francisco)지부 단장으로 활동하였다. 9월에는 상항 한인교회에서 관장하는 국어학교 교사로 활동하면서 미주한인 2세대들에게 구국교육을 실시하였다. 1926년 3월 7일 대한인여자애국단 총단 단장으로 선출되어, 창립 7주년 기념식 행사를 주관하며, 「혁명의 씨는 애국심」이라는 연설을 하였다. 독립정신 즉 애국정신은 자국의 역사와 지리·위인의 역사 그리고 도덕심을 부모가 교육하는 것에서부터 생성되며, 이를 통해 독립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 연설의 핵심이었다. 1927년에는 대한인여자애국단 총단장으로 활동하였으며,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상항지방회가 주최한 3·1운동 기념식에 참석하여 한인 여성들을 대상으로 항일정신을 고취시켰다. 그해 9월에는 삭도(朔都, Sacramento)와 맨티카(Menteca)지방에 거주하는 한인 여성들과 함께 부인전도회 조직을 주도하여 여성의 독립운동 참여를 독려하였다. 1928년에도 대한인여자애국단 총단장에 선임되어, 중국과 연합전선을 구축하여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려는 목적 아래 한인 여성들을 대상으로 중국혁명동정금 65원을 모아 재미화교대일외교후원회에 전달하였다. 1931년에는 대한인여자애국단 재무원로 활동하며 애국단의 건전한 재정과 여성들의 독립운동 자금 수합에 노력을 기울였다. 같은 해 2월 제22회 대한인국민회 창립 기념일을 맞아 신경애·신선희·양제현·최유실 등과 상항지방회에 회원으로 가입하여 여성들의 독립운동 참여 범위를 넓혀 갔다. 1932년 상항지방회와 오클랜드지방회가 공동으로 개최하는 3·1운동 기념식을 성대히 치러 독립의식의 토대로 마련하고자 준비위원으로서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나, 건강이 악화되어 3월 21일 사망하였다. 1925년부터 1932년까지 인구세, 국내 수재 동정금, 3·1운동 기념금, 대한민국민회 보조금, 국민의무금 등을 기부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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